여권사진을 찍으며
캄보디아의 삶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새로운 직장과 살 집을 구하고 다시 이직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것 같다. 캄보디아는 주 6일 근무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저녁까지 일했다. 참 힘들었다. 그래서 긴 연휴가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을 갔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곳 생활을 버틸 재간이 없었다.
여행이라는 나름의 돌파구를 찾은 우리. 덕분에 해외여행을 주기적으로 갔다. 인도차이나 반도 중간에 위치한 이점이 크게 작용했다. 태국, 베트남, 라오스 등 주변국가와의 인접성이 좋아 비교적 쉽게, 자주 해외로 드나들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모든 순간들이 꿈만 같다. 당시 그 시간은 우리 부부에게 큰 활력이고 기쁨이었다.
한국에 와서는 통 그럴 기회가 없었다. 시간도 없고 예산도 없었다. 언제쯤 다시 나가보나 목 빠지게 기회를 엿보다가 올해 큰맘 먹고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장소는 미정이었다. 무슨 상관인가. 그것만으로도 나를 충분히 설레게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만기가 가까워진 아내의 여권을 연장하기 위해 근처 사진관을 찾았다.
아내를 먼저 들여보내고 나는 주차를 하느라 늦게 갔다. 아내는 이미 자세를 잡고 있었다. 다소곳하게, 조금은 긴장한 듯 앉아 있었다. 몇 번의 셔터 끝에 결과물이 TV에 나왔다. 조금씩 다른 사진이 8분할 된 화면에 각각 위치하고 있었다. 이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봐도 썩 내키는 것이 없다.-물론 아내가 고르는 것이지만- 화면 속에서 아내의 모습은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기미, 잔주름, 거북목, 움츠린 자세 등 좋지 않은 것들이 확 드러나보였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두 내 책임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7~8년 전 프놈펜의 어느 카페에서 찍은 사진이 오버랩되었다. 그 사진 속의 아내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참 아름다웠다. 그때의 모습이 지금의 TV 화면 속의 여권 사진과 대조되면서 더욱 나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겉모습만 바뀐 게 아니었다. 아내는 모든 일에 당당했었다. 난 아내의 아름다움과 명랑함, 당당함에 반해 결혼을 했다.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저 화면에서는 그 모습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적잖은 세월이 흘렀지만, 저들에 대한 나의 책임이 꽤 크다고 양심이 말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내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저 주름과 기미는 거의 없었을 것이며, 어깨도 펴져 있었으리라. 손등도 매끄러웠을 것이다. 지금 손은 아무리 봐도 피아노를 치는 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비꼬듯 말했다.
'잘한다 잘해. 섬섬옥수를 저 모양으로 만들다니.'
아내는 나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당신을 고생시키지 않을 만한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그럴만한 능력과 외모와 인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왜 나량 결혼했느냐고 물어보니, 하도 내가 불쌍하고 울어쌓고 해서 그랬단다. -참고로 '~쌓다'는 전라도 사투리인데, 참고로 아내는 부산사람이다-
아내는 나를 따라 캄보디아에서 와서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커리어를 포기하고 온 셈이어서, 단순히 몸뿐만 아니라 심적으로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어쩌겠나, 같이 살아야지. 대신 이제라도 저 기미와 주름, 흰머리에 대한 나의 지분을 조금이나마 털어내고 싶다. 어떻게 할까. 비자금을 만들어 일확천금을 만들 생각은 애당초 하지 말자.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아내의 주름과 흰머리는 2배속으로 늘게 될 것이다. 작은 것부터 보답해 나가자.
뭐 시키면 싫은 표정 짓지 말기. 거짓말하지 않기. 집안일 교육받을 때, 한 번 얘기한 것은 잊지 말고 실행하기, 아무리 관심 없는 얘기라도 적극 호응하기, 아내가 하는 말마다 놀라워 하기, 식사를 차려주면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기, 머리를 안감은 것 같아도 "머리 감았지!"라고 말해주기, 정수리 냄새를 맡아도 좋은 표정 유지하기, 이케아를 몇 바퀴째 돌고 있어도 처음 온 것처럼 활력 있게 다니기, 아침에 커피 타 준 것만 얻어먹지 말고 직접 타주기, 말 다툼할 때 아내의 논리가 너무 빈약하여도 꼬치꼬치 따지지 말기 등. 저것 하나 할 때마다 잔주름 하나가 없어진다고 생각하자. 나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내가 책임져야 한다.
아내의 회춘, 나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