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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피소드] 07. 그녀는 내 삶을 더욱 풍성하

인간 비밀번호

by 알파카

시간이 참 빠르다. 회사의 보안정책으로 3개월마다 컴퓨터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있는데, 체감상 보름마다 바꾸는 것 같다. 필요한 일이긴 하나 여간 귀찮은 작업이 아니다. 그동안 내 이름이나 별명을 의미 있는 숫자와 결합하여 바꿔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만들 것도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정할 수는 없지. 다음날 머리를 긁적이며 비밀번호 찾기 버튼을 누르고 싶지 않다. 가만있어보자.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내의 애칭이다. 이번 달은 아내의 애칭과 생년월일을 조합하여 비밀번호를 정했다.


비밀번호하니깐 생각나는 건데, 아내는 컴퓨터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나의 '인간 비밀번호'가 되어 주었다.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또는 그 세계에 무지하여 경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미지의 세상과 연결시켜 준 장본인이다. 심청이 같은 아내 덕분에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된 나. 많은 분야가 있지만 그중 몇 개만 적어본다.




클래식 음악


결혼 전까지 클래식 음악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남남이다 못해 닿을 수 없는 구름과 같은 존재였다. 베토벤, 모차르트, 백조의 호수, 사계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며,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반면 아내는 음악 전공자라 클래식 음악의 작품과 연주자, 심지어 음악사까지 모르는 게 없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면 아내는 이 곡의 작곡가가 누구인지 묻기 시작했다. 어떤 곡인지도 모르는데 작곡가를 알 턱이 있나. 하지만 뭐라도 말해야 했기에 당시 내 기준으로 가장 어려운 음악 용어 중 하나였던 '드보르자크'를 답하곤 했다. 아내의 작곡가 맞추기 퀴즈는 카페든 서점이든 클래식이 나오는 곳이면 어디서든 계속되었고 나도 한 번은 맞겠지 싶어서 계속 드보르자크를 고집했다.


계속 틀리니 자존심이 상하여, 어느 날은 딱 맘 잡고 유튜브로 클래식 음악을 검색했다. 가장 유명한 곡 10개만 알아놓으면 5번 중 한 번은 맞출 수 있으리라. 그렇게 한 두 번 검색했던 게 시초가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난 어느새 클래식의 바다에 빠져 스노클링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뭔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을 때면-특히 자정 무렵 쓸쓸히 퇴근할 때면- 베토벤의 비창 2악장이 먼저 떠오르고 오랜 시간 이동할 땐 차이코프스키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가볼까 생각하기도 한다. 나로서는 엄청난 변화다.



나물, 해조류 그리고 액젓


난 가평에서 자랐다. 주위에는 온통 산밖에 없어 입맛 또한 그럴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고기 없이는 밥을 먹지 않았다. 이런 나를 아내는 나물의 세계로 초대했다. 냉이, 참나물, 돌나물, 달래, 취나물 등을 활용한 무침요리뿐만 아니라 도다리 쑥국, 달래 된장국과 같은 다른 식재료와의 콜라보까지도 척척 해내었다.


나물은 산과 들에만 있지 않았다. 바다에도 있었다. 아내는 부산 출신임을 십분 활용하여 톳, 꼬시래기, 파래, 매생이, 모자반, 미역줄기,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까지도 그 범위를 넓혀, 각종 식재료의 맛을 느끼도록 했다. 참, 액젓도 빼놓을 수 없다. 꼬롬하고 쿰쿰한 그 맛과 향. 그동안 액젓이 들어가지 않은 김치를 어떻게 먹었나 싶다.


특별히 좋아하는 액젓 요리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고춧가루와 마늘, 깨를 넣은 멸치 액젓에 땡초를 썰어 넣은 것인데, 널찍한 미역줄기나 다시다 하나에 따듯한 밥 한 숟갈을 얹고 이 젓갈에 담긴 땡초 하나를 얹어 먹으면 그걸로 끝이다. 바다와 들, 맛과 향. We are the world 가 따로 없다. 바로 내 입 안에 있다.



옷차림, 잠옷


아내는 패션에 일가견이 있다. 족히 20~30년 된 옷을 장인, 장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아 리폼하여 입을 정도니 말 다했다. 이런 뛰어난 감각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옷을 즐겨 입는데, 그럼에도 그 모습이 상당히 돋보인다. 아내가 그랬다. 자연스러운 연출 속에서도 포인트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고수들만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그 점이 나에게 필요했던 부분이다.


어떻게 해서 이러한 경지까지 올랐냐고 물으니, 젊었을 때 패션잡지를 계속 봐왔고 적잖은 돈을 소비하며 얻은 시행착오의 결과라고 한다. 그러니 나의 패션 수준이 정체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금까지 옷에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내가 옷을 못 입는 게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부끄러움은 오롯이 나만 감당하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홀몸이 아니니 아내까지 낯부끄러워진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옷차림에 대해 하나씩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결혼 후 10년이 되어가도록 손수 출근 복장을 골라주고 있다.


물론 가끔 내가 직접 고른 옷을 입고 나가기도 한다. 그 모습이 크게 부끄러울 정도는 아니다. 한때는 이것이 나의 패션 감각이 일정 수준 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깨달았다. 아내가 의류를 구입하기 시작한 이래로, 눈살 찌푸리게 할 만한 옷이 아예 없었다는 것을. 애초에 황당할만한 코디를 할 여지를 원천 차단했던 것이다.


더불어 아내는 잠옷을 여러 벌 사주었다. 처음에 잠옷을 사준다고 했을 때 얼마나 투정을 부렸었는지. 그냥 편한 옷 입고 자는 것이 좋다, 거추장스럽다, 참 볼멘소리를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잠옷이 없으면 잠들지 못하는 몸이 돼버렸다. 깨끗하게 씻은 후 위아래 세트로 된 잠옷을 입고 나면, 나 자신이 뭔가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내 몸이 먼저 안다. 비로소 숙면을 취할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또한 계절별로 달라지는 잠옷의 착용감을 느끼는 재미도 쏠쏠하다.




위에 언급한 것들 뿐만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경험하고 알아가는 것이 많다. 40대. 좀 늦은 나이긴 하지만, 뒤늦게나마 호모 사피엔스의 탈을 벗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진정 그렇다. 뭐든 새롭게 경험해보니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깊이가 달라진다. 또한 사람들과 교감할 것도 많아져 대화의 폭도 넓어졌다.


되려 내가 아내에게 소개해야 할 것도 있다.-많진 않다- 축구다. 오프사이드도 모르고 어느 팀이 어디로 골을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니 참으로 안타깝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세계를 모르고 있다니. 어디서부터 교육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대단한 숙제이다. 아내도 이전의 나를 바라보며 이런 마음이었을까? 나도 마땅히 인고의 시간을 거쳐 축구의 재미를 알려주리라.


언젠간 좋아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같이 응원할 날이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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