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라고 쓰고 전신거울이라 읽다.
취준생 시절, 백수 시절, 도합 수백 개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쓴 듯하다.-생각해보니 회사를 다니면서도 많이 썼다.- 서류전형에서 상당수 고배를 마실 때 지원한 회사의 인사팀이 그렇게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 채용 직무와 자격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는데 면접의 기회조차 주지 않다니! 그들은 나에 대해서 쥐뿔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나 같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회사는 가나 마나 한 곳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음 자소서를 준비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왜냐하면 지금도 난 나 자신을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무슨 근거로 자소서에 있는 내가 진짜 나라고, 당신네 회사에 적합한 인재라고 믿어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사측에서 1차, 2차, 때로는 3차까지 면접을 보는 것이 이해가 간다. 어찌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일까.
MBTI가 대세다. 60억을 딱 잘라 16개 유형으로 나누는 게 못마땅하지만, 그건 차치하고라도 검사 방식의 신빙성에 의구심이 있다. 특정 상황 속에서 '나는 이럴 것이다' 혹은 '이렇다'라는 대답을 근거로 개개인의 성향을 판단하는데, 과연 내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타인을 판단하듯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가능할까? 만약에 그게 가능했더라면, 월드컵 경기에서 꼭 제3국 심판을 배정할 필요도 없겠다. 내로남불이라는 용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하기 전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외모를 제외하고- 흠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 그게 진짜 나인 양 착각하며 살았다. 결혼을 하고 깨달았다. 그건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역시 사람의 참모습은 온실 밖에서 드러나는 법이다.-결혼생활이 온실 밖에라는 말은 아니다-
두터운 화장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아내와의 갈등은 클렌징크림 같아서 서서히 나의 민낯을 드러나게 했다. '이 정도면 나의 모난 성격을 다 보였겠지' 싶었는데 어느새 또 다른 모습이 발견되었다. 세상에 이런 추잡하고 유치한 사람이 있다니. 삼각형, 사각형을 넘어 이제는 꼭짓점의 개수를 알 수 없을 정도의 모난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은 인정한다.
심장에 비수를 꽂는 아내의 독설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는 일단 반발하고 보지만-일종의 방어기제로 이 부분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난 진짜 그 정도의 사람이란 것을 깨닫는다.
성격만 더러웠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실제 위생 개념도 더러웠다.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할 수 없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동안 이렇게 병치레 안 하고 살아온 것이 기적이라 느낄 정도다. 음식점 사장이 안되길 다행이다. 방문한 손님들은 더러 복통에 시달렸을 것이며, 식약처에서 나오는 긴급 점검에도 매번 걸려 업무 정지를 받기 일쑤였을 것이다. 아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더러운 사람이었는지 몰랐을 게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아내가 옆에 있으니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행동도 주의하게 된다. 코도 한 번 덜 파게 되고, 가능한 방귀도 참는다.
더 멋진 내가 될 수 있도록 전신거울이 되어준 아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얼마든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지금처럼 계속 비수를 꽂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