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여행을 몹시 기대하고 있는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앞선 편지에서 여행 얘기를 하다 보니 감상에 젖었어.
여행 진짜 많이 했어, 그렇지? 세상의 어떤 부부가 우리와 같을까. 낯선 공기와 색감, 새로운 맛과 언어를 경험하며 자연과 인간의 작품을 감상했어. 캐리어를 끄는 군중 사이에서 우린 50L짜리 배낭을 메고 다녔지.
각 도시의 매력과 현지 사람과의 만남. 이 기억들이 우리 삶에 이렇게 큰 활력소가 될 줄이야.
우리만 가지고 있는 재산이라 생각해. 우린 원한다면 아무 때나 인출할 수 있고, 한참 웃고 떠든 후에는 도로 입금하면 돼. 게다가 그 비밀번호는 우리만 알고 있으니 절대 빼앗기지도 않지.
오늘은 어떤 기억을 인출해 볼까.
호찌민의 쌀국수 그리고 우리 맞은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있었던 한 서양 남자.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에서 춤추던 아주머니들.
하롱베이 크루즈 위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했던 쿵후.
방비엥의 블루라군에서 했던 자기의 용감한 다이빙.
루앙프라방에 새벽에 도착하여 노숙을 하고, 아침에 참가했던 탁발식.
끄라비에서의 호핑 투어.(여기서 자기가 멀미를 했었나? 서양 부부가 멀미약을 건네줬었지)
방콕의 짜뚜짝 시장과 12시간의 슬리핑 버스.
치앙마이의 타패게이트와 님만해민에서의 데이트.
양곤 길거리 목욕탕 의자에 앉아 수많은 미얀마 남자들과 밀크티도 마셨지.
바간과 만달레이의 유적지는 수려했지만 우린 배탈이 났었고,
인례호수에서 비를 맞으며 우리만 유일하게 수상가옥 투어를 했지.
쿠알라룸프루의 잘란알로에서 했었던 먹방.(식당 주인이 놀라워했었지)
랑카위의 독수리.
말라카의 이국적인 풍경(이때 자기는 말라카의 풍경보다 예뻤어).
우붓 바투화산의 별똥별과 일출.
길리섬에서 거북이와 함께한 스노클링.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우리 옆의 아이는 갈매기에게 햄버거를 빼앗겼어.
멜버른의 멜빵 아저씨의 핫초코.
로마의 판테온 그리고 바티칸 박물관.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그리고 우리를 위해 편법을 무릅쓰고 티켓팅해 준 사랑의 매표소 아저씨.
피사의 사탑.
시에나의 캄포광장.
베네치아의 무라노 브라노 섬.
빈에서의 사운드 오브 뮤직 미라벨 정원.
잘츠부르크의 소금성 그리고 자기가 사준 크림빵. 우리가 먹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왔지.
체스키 크룸로프의 난쟁이 호텔.
프라하의 야경.
그때의 여행은, 녹록지 않았던 우리의 삶의 한 줄기 무지개였어. 그 무지개를 보려 더욱 악착같이 다녔지. 그러지 않았으면 당시의 삶을 견디지 못했을 거야. 근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내 삶의 진짜 무지개는 바로 당신이었어.
자기가 옆에 없었더라면 그 모든 나라와 도시는 회색 빛깔처럼 느껴졌을 거야.
우리, 함께한 날보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욱 많잖아? 더 많이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거라 기대해. 그러니 건강해야 해. 요즘 몸매가 하리보를 닮아가는 것 같아 신경 쓰여. 예전엔 안 그랬는데 최근엔 왜 이렇게 식탐을 못 참는지. 자기가 많이 먹는 건 괜찮은데 건강해지지 않을까 봐 그게 걱정이야.
자기도 나랑 여행 많이 가고 싶잖아, 그렇지? 늘 건강해야 해. 약속!
다음 여행을 몹시 기대하고 있는 당신의 남편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