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 인간계 할 것 없이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어딜 가나 있다.
기다리지 못하고 여하튼 먼저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유형.
여기 벚나무 조합(용인시 기흥구 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파트 화단에 심긴 모 벚나무씨는, 함께 하기로 한 4월 4일을 기다리지 못한 채 이틀 전에 이미 꽃을 피웠다. 이를 두고 조합원 사이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벚나무씨는 이렇게 말했다.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수상쩍더라고요.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스트레칭을 틈 날 때마다 하는데, 해를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하는 것인 줄 누가 알았겠어요."
마찬가지로 익명을 요구한, 충청도 출신 모 벚나무씨도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깐 말이여, 지난번 봄비가 왔을 때 말이여. 물을 을매나 다부지게 빨아 대는지, 양쪽 볼이 거의 닿는 줄 알았네. 아따, 그때 알아봤었어야 하는디. 그랬으면 내가 아주 혼구녕을 냈을 것이여."
씩씩 거리며 흥분해 있자 내가 인간 세상 이야기를 해주었다.
"말도 마세요. 여긴 더해요. 엘리베이터를 타잖아요? 금방 닫히는 문인데, 그걸 못 참고 닫힘 버튼을 몇 번이나 누르는 줄 아세요? 어젠요 운전을 하고 가는데 신호가 걸려서 잠시 멈췄거든요? 잠깐 딴생각을 하다가 신호가 바뀌어서 출발하려는데, 그새를 못 참고 뒤에서 빵빵 거리는 거 있죠."
두 벚나무씨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세상에 그런 바쁜 생물들이 어디에 있냐고 한다. 난 답답함에 말을 이어 나갔다.
"왜 없어요. 심지어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먼저 나가려고 바퀴가 땅에 닿자마자 안전띠 풀고 일어나서 짐 꺼내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에이, 설마 하는 눈치다. 인간의 이동수단을 예로 든 내가 잘못이다. 안 되겠다. 현실적인 예를 들어야겠다. 마침 성격 급한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이 사람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말해 줄 수 있다.
"제 아내가 어제는......" 하려는 찰나, 본능적으로 입을 닫았다.
아내는 이 동네 산책을 자주 하는데, 벚나무들이 서로 눈짓하며 이렇게 소곤거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때 그 사람 알지? 저쪽 봐봐. 지금 간다."
"아유 기억 안 나? 거 있잖아 성격 급하다는."
"아 맞네 맞아. 아~ 성격 참 불같이 생겼네."
아내는 성격도 성격이지만 눈치는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 눈알 돌아가는 소리까지 다 듣는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근처의 벚나무부터 한 그루 한 그루 심문할 것이다. 운 좋게 그들이 모두 함구한다 하더라도, 머리를 몇 번 굴려 앞뒤 정황을 파악할 것이다. 그녀에겐 식은 죽 먹기다.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