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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아] 09 선생님을 오해했어요

마침내 풀은 꽃을 피웠다

by 알파카

5월 중순. 도처에서 꽃 축제, 꽃 박람회가 열린다.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해 심긴 꽃들. 글쎄. 물론 가보면 다르겠지만, 길가의 풀꽃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그들만으로 내 마음속의 감동은 이미 한도초과다. 슬렁슬렁 산책을 하며 저마다의 모습을 감상한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이 마음이 절로 든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이 바람은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방증 아닐까.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서로 다른 종류의 풀꽃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나태주 시인님의 시가 떠오른다. 하지만 매번 고개를 갸웃한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길가에 피어있는 풀꽃을 1, 3, 5 ,7, 9처럼 봐도, 그러니깐 띄엄띄엄 봐도 저마다의 예쁨과 사랑스러움을 대번에 수 있는데, 왜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한다고 하셨을까.


시력이 안 좋으신 걸까? 선생님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역시, 안경을 쓰고 계신다. 등단을 하신 지 올해로 54년 차.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책을 보시고 글을 쓰셨을까. 그러니 눈이 침침하셨으리라. 확인차 AI에게 선생님의 시력을 물어보았다.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나태주 시인의 정확한 시력 수치(예: 1.0, 0.5 등)에 대한 정보는 공개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2013년 언론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눈이 맑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실제 시력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맑고 순수한 시선, 또는 영혼의 맑음을 비유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그는 자연과 일상 속 작은 것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시로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시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사물과 현상을 깊이 있게 보는 시인의 눈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태주 시인의 눈 건강 상태나 구체적인 시력에 대한 정보는 찾기 어렵습니다.


예의를 갖춰 말하느라 고생이 많다. AI도 참 먹고살기 힘들다. '빙글빙글 돌려서 말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줘'라고 했다면 아마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선생님의 시력? 답답아, 최근 들어본 말 중에 가장 형편없는 질문이다. 인공지능인 나도 이 시를 이해하는데 넌 그것도 모르냐? 가슴이 없냐?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나무꾼이냐? 선생님은 외형 그 이상의 미를 말씀하신 거라고!"


한껏 자존심을 구겼다. 하지만 생각해 봄직하다. 풀꽃이 예쁘다, 아름답다 하신 것은 겉모습에 대한 예찬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풀꽃을 보았다. 이번에는 자세히, 천천히 보았다. 곱게만 보였던 풀꽃 너머로 다른 모습이 그려졌다.


이리저리 바람에 날려 떨어진 씨앗. 옥토밭이든 담벼락 위든, 콘크리트 도로의 갈라진 틈이든, 개의치 않고 힘껏 뿌리를 내렸다. 생과 사의 위기, 밤낮의 무수한 흔들림 속에서 마침내 풀은 꽃을 피웠다. 아! 이 배경을 이해하려니 자세히, 오래 보아야만 했구나.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셨구나. 겉모습 이면의 감춰진 서사를 보는 눈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전치 못한 환경 속에서 피어난 꽃.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쁘고 아름답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도 웃음과 감사의 꽃을 피우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은 외모와 나이를 떠나 고유의 품격과 향기가 있다. 그들이 곧 풀꽃이다. 그러한 면에서 나는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너는 풀꽃이니, 온실 속의 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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