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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아] 08 외유내강이었어

봄의 전령사, 꽃잔디

by 알파카

늦은 저녁. 산책하기 좋다. 해도 길어졌고 날씨도 훈훈하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를 따라 30여 분간 걸어본다. 어떤 교회 앞에서 멈췄다. 조경을 해 놓은 나무와 돌 사이로 작은 보라색 꽃들이 옹기종기 피어있다.


봄의 전령사, 꽃잔디였다.


꽃잎을 자세히 보았다. 작은 하트 모양 꽃잎 다섯 개가 모여 있다. 둥글게 둥글게 게임을 하다가 하나님이 숫자 다섯을 외쳤나 보다. 작은 녀석끼리 급하게 손을 맞잡았다. 아, 이렇게 귀여울 수가. 이 생명체를 어찌할꼬.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다. 보고해주고 싶다. 누구도 함부로 못하도록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싶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 영상 7도다. 일교차가 심하다. 생각보다 너무 춥다. 훈훈했던 어제저녁의 다음날이 맞나 싶다. 아파트 공동현관을 나서며 '어유 추워, 어유 추워'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외투로 몸을 꽁꽁 싸맸다. 목을 집어넣어 피부노출을 최소화했다.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던 그때, 누군가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 고개를 돌렸다. 꽃잔디였다. 모여있는 꽃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했다.


"그렇게 추워? 쯧쯧. 추우면 얼마나 춥다고."

"어제 날 보호해 주겠다며? 작고 유약해 보이니 지켜주고 싶다며?"

"어떻게 된 거야? 겨우 영상 7도에 벌벌 떨고 말이야."

" 몸이나 잘 간수해."


민망함을 무릅쓰고 다가갔다.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명 어제와 같은 꽃인데, 오늘은 달리 보인다. 키는 여전했지만 당차고 꼿꼿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근방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아참, 그러고 보니 벚꽃보다 먼저 피었었지? 그럼 오늘보다 추웠던 날도 버티었던 거야? 게다가 바위틈 같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잖아. 음...... 알고 보니 이 친구, 외유내강이었어.'


난 그렇다. 으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습성이 있다. 고치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오늘도 하나 배웠구나' 하는 동시에, 통근버스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는다. 몸을 일으켰다. 급하게 뛰어가다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그래, 꽃잔디,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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