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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피소드] 10. 독자는 바보가 아니야

나의 작가, 평론가, 고문관, 빨간펜 선생님

by 알파카

나의 브런치의 간판 주제인 '아내&에피소드'가 작년 10월부터 감감무소식이다. 그럼 그동안 팽팽 놀았단 말이냐. 아니, 그렇지 않다. 지난 4월 '아내 생일 기념' 편지 글 10편, 5~6월 '봄아' 시리즈로 또 10편, 도합 20편의 글을 올렸다. 시간이 없다 없다 하면서도 노력만 하면 어떻게든 결과가 나오는 게 글쓰기다. 그 점이 늘 불가사의다.


다만 문제가 조금 있다. 노력만 하면 뭐든 나오긴 하는데 그게 양질의 글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몇 번을 퇴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보면 어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다. 그런 문장과 문단이 수두룩하다. '잘 글을 쓰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전자는 노력만 있으면 되지만 후자는 노력 플러스 실력이 있어야 . 이것 없이는 그저 똑같은 수준의 글만 양산해 낼 뿐이다.


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나의 글이 찍어내기만 하면 나오는 값싼 공산품처럼 되지 않기를. 따라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크게 두 방법이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정석적이며 틀림없는 이 방법은 다만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오늘만 보며 사는 나, 즉 당장 쓰고 있는 글의 심폐소생술을 원했던 나는 만족할 수 없었고, 좀 더 즉각적인 방법을 찾다가 실력자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글에 대한 평을 듣거나 첨삭을 요청하는 것이다. 마침 냉철하고 가감 없이-때론 자존심을 건드리면서까지- 평가를 해 줄 만한 재야의 고수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아내였다.


아내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지금도 읽지 못한 흰고래 모비딕, 노인과 바다, 제인에어 등 세계의 고전들을 코찔찔이일 때 이미 섭렵하였으며, 무심코 제출한 글이 월간 에세이에 선정될 정도로 글쓰기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내가 그녀를 인정하는 건 단지 이러한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난 평생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단어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쓸 때, -나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담백하고 정갈한 문장으로 글을 쓸 때 등 평상시의 이런 면면을 보면 나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책을 3권이나 내신 수필가 장모님의 딸이니, 그 모전여전이 어디 갈까.


어느 날이었다. 아내는 나의 어떤 글을 읽은 후 이런 평을 내렸다. [너무 구구절절해.] 왜 그러냐고 물으니 형용사나 부사 같은 미사여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론했다. [나의 심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그런 어휘들이 필수적이야. 말하고자 하는 그 상황과 감동을 읽는 이로하여금 그대로 전달해야 하니까.]


아내는 예시를 들었다. [조성진 님의 피아노 연주를 모르는 바가 아니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강하게 치는 것을 봤어? 그분이 그렇게 못해서가 아니잖아. 곡의 완성도와 클라이맥스를 위해 일부로 절제하는 거라고.]


나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예시를 들어주었다. [여자들이 화장을 할 때 얼굴의 모든 부위를 진하게 하지 않잖아. 전체적으로 적절하게 하되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만 포인트를 주는 거라고. 오히려 그렇게 했을 때 화장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거고.]


나의 글이 조성진 님의 연주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여성이 화장을 어떻게 하는지, 난 그건 모르겠고 단지 읽는 이의 이해와 감동을 끌어내고 싶어 모든 부분에서 충분히 설명을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아내의 손동작이 커졌다.-매우 답답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모든 상황을 묘사하고 일일이 다 설명하여 감동을 쥐어 짜내려 하니 글이 구구절절해지지.]


난 반문했다. [아니, 감동을 짜내는 것이 나빠? 그럼 노래는? 영화는? 드라마는?] 우리의 논쟁은 점점 산으로 가는 것 같았다.


아내는, [아니 내 말은 그렇게 모든 상황을 다 디테일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러면 오히려 몰입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어느 정도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둬야 해. 그러면 반대로깊이 빠져들게 . 영화를 생각해 봐. 어떤 영화는 결말을 보여주지 않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잖아. 열린 결말을 통해 대중이 더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게 하는 거라고.] 하고는 한 마디를 더 추가했다. [독자는 바보가 아니야.]


이런 기가 막힌 명언에도 불구하고 나의 머리가 갸우뚱하자 아내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는지 부산 사투리로 한 마디를 더 하고는 휙 돌아 앉았다. [됐다 마 치아라!] 이를 통해 모든 논쟁이 마무리되었다.


당시의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무료 첨삭을 받고 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옛말이 마냥 맞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비스가 언제 유료로 전환될지 모르니 빨리 실력을 키워야 한다. 아니, 차라리 유료면 낫겠다. 그에 상응하는 가사노동을 요구할까 두렵다. 갑자기 초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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