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엄마들의 고민은 시작만 있지 끝이 없다.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엄마'가 있습니다.
'1) 기왕 하는 엄마 역할을 즐기고 싶은 자' 그리고 '2) 엄마 역할이 너무 어렵고 부담스러운 자'
물론 어떻게 칼로 무 자르듯이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단 칼에 쪼개어 나눠 규정할 수 있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요.
나는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늘 오락가락하는 엄마라고 해맑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와는 정 반대로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며, 그저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을 얼버무리는 엄마도 있을 테고요.
당신이 어느 쪽의 '엄마'이건 그리 큰 상관은 없습니다. 그래도 만약에 어떤 마음가짐을 기본값으로 세팅한 엄마인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다음의 방법을 추천해보고 싶습니다.
'자녀 양육'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을 떠올려보는 것입니다. 머리 위에 '자녀 양육'과 관련한 특정 순간의 장면을 떠올려도 좋고, 연필로 종이에 직접 끄적여 무엇이든 손으로 그려보아도 좋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무의식적인 자동연상 기법'을 통해 무심코 그려낸 그림 한 장으로 '엄마 역할'에 관한 스스로의 마음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림 속 엄마가 아이 옆에 가까이 붙어, 아이의 학습을 열심히 도우며 에너지를 불태우는 모습이거나 혹은 해맑은 표정을 지은 엄마 모습의 그림을 그렸다면 당신은 위의 1)'기왕 하는 엄마 역할을 즐기고 싶은 자'로서 마음가짐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에 아이를 재워놓고(소위 말하는 '육퇴' 후) 맥주를 마시는 엄마를 그려두었거나 혹은 아이가 어질러놓은 방을 정리하느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엄마 모습이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육아'에 관한 긴장도와 스트레스가 꽤나 높은 상태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쨌거나 이 시대의 '자녀 양육' 장면 묘사 그림을 그린 결과물을 여러 장 모아 놓았다고 상상해봅시다.
여러 장의 그림 중 엄마들이 여럿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고,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려 신나게 놀이에 빠져 있는 그림은 좀처럼 발견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시간을 되돌려 그때 그 시절 과거의 당신 엄마에게 누군가 '자녀 양육'에 관한 그림을 그려보라 했다면 어떤 그림이 완성되었을까요?
'셋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구호를 외치던 1980년대에 탄생한 저의 경우를 상상해보겠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익숙한 엄마 모습 중 하나는 제가 방 안에서 조용히 노는 동안 옆집 아주머니와 커피에 프림 두 스푼을 타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엄마는 저를 교육함에 매우 열성적이지도 혹은 매우 지치지도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엄마 말을 좀처럼 귀담아듣지 않아 실수를 하거나, 집에서 언니 동생과 언성 높여 다툼을 하는 때에 호된 꾸지람을 하시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셨을 뿐이죠.
그랬던 저희 엄마가 자녀양육에 관한 그림을 그리셨다면 아마도 동네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늦게까지 노는 딸에게 집으로 당장 들어오라고 목청 높여 딸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을 그리셨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말 안 듣는 짓궂은 자녀에게 꾸지람을 하느라 역정을 내고 있는 본인 모습을 그리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찌했건 그렇게 또 세월이 흘러 엄마가 낳아주신 제가 어느덧 제 딸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세대가 교체되었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들의 마음가짐과 환경도 그전 세대와는 많은 점들이 달라졌지요.
저는 우리 엄마처럼 딸에게 저녁밥을 먹으러 들어오라고 목청 높여 소리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요즘 아이들 대부분은 초등 저학년 시절부터 핸드폰을 소유합니다. 또한 저는 딸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저희 엄마처럼 역정을 내며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가정에는 자녀교육을 위한 회초리가 아예 없습니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순간부터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의무로 받고 자라납니다.
고로 이 시대의 엄마들은 배 아파 낳은 자기 자식의 종아리를 걷으라 하여 회초리 한 대를 때려주는 일이 아주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출산률이 바닥을 치는 이 시절, 사회적으로도 아이들은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소중하고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권위를 함부로 내세우지 말고 자녀의 '마음 읽어주기'를 해주어야 한다고 하니, 그 역할이 어렵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 정신없이 사느라 내 마음도 좀처럼 모르겠는 게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어른의 마음 아닐까요?
심신이 피로한지라 누가 내 마음 좀 알아줬으면 좋으련만, 엄마가 된 이상 뜬구름 잡기 같이 어렵게 느껴지는 자식의 마음 헤아려주기도 해내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그뿐인가요? 아이를 낳으면 그 순간부터 긴장된 '선택의 고민'앞에 끊임없이 놓여야 해요. 예를 들어봅시다. 2013년 첫 딸을 낳았던 저는 출산 직후 조리원에서 머무는 이 주간의 기간 사이에 '저명한 유아교육 학자'의 이름을 딴 유아용 교구와 전집에 관한 설명회에 일정에 참여했었습니다.
초등임용을 거쳐 학교에 근무하던 저로서는 설명회에서 언급되는 다양한 유아교육 이론들이 그다지 낯선 것들이 아니었지요. 그리고 저에게는 그 설명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너무나 뻔히 보이는 상황이라 별 흥미가 전혀 생겨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와는 달리 의외로 많은 신생아 엄마들이 조리원에서 주최한 교구 설명회 끝무렵 매우 '진지한 고민'에 휩싸이게 됩니다.
'저명한 유아교육 학자'에 의해 개발된 교구와 전집을 사는 것이 내 아이를 위한 현명한 소비인 것인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했던 것이죠.
이렇게 아이를 낳자마자 이 시대의 엄마들은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일 운명에 처합니다.
다양한 육아 용품과 교육 서비스 구매 그리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선택과 등록 등 귀중한 내 아이를 위해 '현명한 엄마'가 되려고 한 시도 쉴 새 없이 바쁘게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게 바로 이 시대 MZ 엄마들의 삶입니다.
엄마들의 고민은 쉽사리 끝날 리가 없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들의 고민은 더욱 증폭됩니다.
이제 내 아이는 진짜 '대한민국의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엄마의 머리는 복잡해지고 맙니다.
초등시절, 사회성과 학업 두 가지 모두 뭐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고들 합니다. 초등시절에 형성된 아이의 생활습관이 남은 인생을 결정짓는다고도 하고 말이지요. 그런 얘기를 듣고 나면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말고 채워주어야 하는 게 바로 자신의 역할인 것만 같습니다.
이 시대의 엄마 역할이란 바로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어렵고 복잡해지는 것', 그것이 아닐까 싶기조차 합니다.
그런데 비단 '엄마 역할'이 당신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제가 아는 교육학 전공 여교수님은 남편으로부터 '사교육 없는 엄마표 교육'으로 자식의 자랑스러운 대학 입시 결과를 맛본 사례를 들어, 본인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진 적이 있었노라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매우 많은 여교사들도 자녀교육에 관한 극도의 피로감을 느낍니다. 교육계 직종에 몸담고 있다 하여 본인의 자녀교육까지 완벽하게 해내리라 생각하시면 너무 큰 오해입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 아시듯이 말입니다. 그저 어디나 사람 사는 곳 매한가지 그러하듯 개인차가 매우 클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빠의 무관심 그리고 엄마의 정보력으로 아이가 잘 클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엄마의 정보력이 떨어져서 내 아이가 뒤쳐질세라 이 시대의 엄마들은 무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지요. (엄청난 노력과 정성을 아이에게 쏟아부어 애쓰는 엄마들일수록 더 많이 괴로워하십니다) '나의 정보력이 부족했던 걸까?', '그것이 과연 내 아이를 위해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묻고 싶습니다.
자녀를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상위권 대학으로 무사히 진입시키는 것'이 이 시대 엄마에게 주어진 미션인 것입니까?
그렇게 엄마 역할에 성공하면 스무 살 이후 아이의 남은 인생도 역시 그렇게 상위권의 만족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걸까요?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했건 분명한 건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절의 MZ세대 엄마들은 '자녀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피로감이 넘치는 무거운 '고민' 앞에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한 고민들이 정말 나와 나 아이를 위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확신이 없다. 다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가만히 있느니 차라리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일 뿐)
대단한 것 같지만 지내고 나면 사실 그렇게까지 대단할 거 없는 일들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아붓다가 시간을 흘려보내고 난 후 '내가 왜 그렇게까지 심각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 적 혹시 있으신가요?
프로페셔널한 자녀교육 정보를 습득하고 내 아이를 이끌어가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마음이 괴롭기까지 하시다면이 이 책이 조금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앞으로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언어를 풀어내어, 엄마로서 당신 어깨에 놓인 무거운 책임감이 녹아내리게끔 이 책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볼 셈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