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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Mar 25. 2024

고민상담1편- 학교가 재미 없어 싫다는 아이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보낸 사람    이*희 <juh*e82@gmail.co..

받는 사람    최은영


2024년 2월 21일(수) 오후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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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생님?

평소에 즐겨보는 브런치스토리에서 우연히 선생님의 글을 봤어요. 요즘 엄마들의 고민에 대한 답변을 한 권의 작품으로 풀어내보시려는 듯싶더라고요:)  


고민을 보내면 친절하게 바로 이메일로 답변을 주시는 건 아니라고 하셨는데 막상 답메일이 오지 않으면 뭔가 섭섭할 것 같기도 해서 고민하다가, 그냥 이렇게 용기 내어 질문을 보내봅니다.


새 학기 3월이 되었는데 저희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게 너무 싫다고 해요. 매일 아침이 전쟁입니다. 아이 말로는 '선생님도 별로, 친구도 별로'라서 학교에 있는 시간이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하네요. 아이를 달래고 또 달래서 겨우 학교에 보내고 있는데, 저도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네요. 일 년 내내 이런 모습을 지켜보게 되는 건 아닌지 답답하고 그렇다고 전학을 갈 수도 없고 말이에요.


저희 아이만 예민한 건지 아니면 제가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 키운 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선생님과 친구들 때문에 마음이 힘들어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하는 아이한테 화를 내면서 학교는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니 빨리 등교준비 하라고 고함을 내지를 수도 없고, 이를 어째야 하는지 정말 답답하네요.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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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연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또 다른 어머님들이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생각을 정리해 볼 기회를 주셨네요. ^^*


저는 요즘 이*희 님이 경험하고 계신 어려움을 비슷하게 겪고 있을 분들이 의외로 아주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아이들 소위말해 '알파세대' 아이들은 저희가 자라나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거든요.  


우선 아이의 그 표현에 너무 힘들어하지는 마세요.

아이는 엄마가 학교에 가기 싫은 자기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줄 거라는 기대심에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고 있을 뿐입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봅시다. 저희도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매년 새 학기 학급이 바뀔 때마다 늘 긴장감을 느껴왔습니다. 어떤 해에는 운이 좋아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 무척 행복했던 적도 있고, 또 어떤 해에는 같은 반에 있는 그 어떤 아이와도 마음을 편하게 터놓고 지내기가 어색해서 학교 가기가 썩 행복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학교에 가기 어색하고 불편한 내 마음을 부모님께 솔직하게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엄마, 학교 가는 거 재미가 없어."라고 이야기하면 분명 저희 엄마는 "야! 학교에 재미로 가는 거냐? 이 녀석!"

하고 꾸지람을 하실 게 뻔하게 그려졌거든요.

그뿐인가요? 저희 어린 시절에도 물론 학교에 이런 선생님 저런 선생님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분들이 함께 계셨습니다. 친한 친구랑 싫은 선생님 험담을 하기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너무 별로라서 학교에 가기 싫다'라는 말을 감히 부모님께 입 밖으로 내어 표현할 것은 엄두도 못 내었습니다.


왜냐고요?


그 시절만 해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개근상'이 곧 학창 시절 '성실함'을 입증하는 증거였고, 졸업식마다 '개근상' 받는 것이 매우 명예로운 일인 듯 여기던 걸 기억하시지요? 아이들이라면 어른들 담소 나누는 이야기에 안 듣는 측면서도 귀를 쫑긋 열고 듣기 마련이니, 당연히 아무리 학교에 가기 싫어도 부모님께 감히 그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려면 엄청나게 큰 용기가 필요하던 그 시절을 우리는 지내왔던 것입니다.


사실 냉철하게 이야기해서 학교는 '재미있어야 하는 곳'이 아닙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최초로 나와 다른 여러 다양한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사회화'를 경험해야 하는 곳이지요. 저희 때도 학교 가기 싫은 마음을 가진 아이들은 매한가지로 많았을 겁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각 가정의 문화와는 너무나 다른 '낯설고 귀찮은 규칙과 사람들'이 가득할 뿐이니 말입니다. 의외로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각 가정의 부모님마다 서로 다른 교육관 혹은 가치관을 갖고 계신 경우를 많이 관찰하게 됩니다. 교육관과 가치관에 따라 아이들도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이러한 현상을 '가정 문화'의 차이로 귀인한 것이라고 설명드립니다.


공공기관으로서 초등학교의 본래적 존재 이유 자체가 사실 어쩌면 그 '낯설고 귀찮은 규칙과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적응해 나갈 수 있는 '사회화 적응력'을 연습하기 위한 것 아닐까요? 최초의 사회화 기관이 '가정'이며 점차 그 범위를 넓혀 '학교'와 '직장' 및 '세상'으로 나아가는 게 인간의 삶이니 말입니다.


다만 저희 자라던 때와 달라진 점이 몇 있다는 건 인지해두셔야 합니다.


첫째,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어른에게 이야기할 때 과거에 비해 주저함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요즘 아이들이 이 시대에 태어나 누리는 특권과도 같은 것입니다. 과거 자신의 부모세대와는 다르게 권위적이지 않은 민주적인 부모가 되어 아이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MZ세대 부모들 밑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니, 우리 자랄 때에 비하면 자유롭게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표현력이 놀랍기 그지없기조차 합니다.


둘째, 부모들은 자녀가 무언가 불편함을 토로하면 즉각적으로 해결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을 과도하게 느낀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요즘 이 시대의 부모들이 너무 예민해서 그런 게 절대 아닙니다. '자녀의 마음 읽어주기' 육아를 하지 않으면 아이와의 관계가 영영 틀어지거나, 아이에게 부모 사랑에 관한 결핍감을 심어주는 게 아닐까 불안을 조성하는 영상물을 매우 자주 접해본 경험을 이 시대 부모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알파세대 아이들은 지구상 존재했던 그 어느 세대보다도 '재미'에 민감합니다. 3-4세 유아기부터 패드로 온갖 화려하고 재미난 영상물을 접해왔으니 말입니다. '재미' 있으면 영상을 거부해도 되는 권리도 매우 어린 시절부터 누려온 셈입니다. "엄마! 이거 재미없어요." 하면 바로 우리 아이 취향에 맞는 더 재미있을 법한 영상물을 찾아주는 엄마가 곁에 있었을 테니까요. (과거 TV 채널 일정표를 확인하며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 상영 시간을 고대하며 인내심을 기르던 우리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알파세대 아이들의 인내심은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로 이*희 님이 지금 자녀 때문에 겪는 이 어려움은 '이 시대의 학부모'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그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뿐이라는 걸 우선 인지해주시길 바랍니다.



자,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학교가 재미가 없어 가고 싶지 않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그 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불안해진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아무 반응이 없을 경우 자기감정이 무시당한 마냥 짜증을 낼 것이고 엄마가 아이의 학교생활에 과도하게 앞서 나가는 걱정(아이가 괴롭힘을 당하거나 또래 친구에게 무시를 당한 건 아닌지 등)을 하는 듯싶으면 자신이 엄마에게 걱정을 끼친 듯싶어 죄책감을 느끼거나, 혹은 엄마의 걱정이 진짜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더더욱 학교에 가기 싫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반응은 하시되, 매우 침착한 반응을 보이셔야 합니다.


"아, 그래? 처음 적응하는 기간이라 우리 00 이가 많이 힘이 든가 보네."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 낯설고,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되는 생각들이 자꾸 머리 위로 떠올라서 그래."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야."

"침착해서 나쁠 거 없으니 천천히 상황을 지켜보면서, 우리 00 이가 뭐 때문에 어려운지 살펴보자."


"1년이 지나고 나면 지금 생각했던 것보다는 친구들도 선생님도 의외로 괜찮은 사람들일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다독여주시는 거 어떨까요?


그리고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는 신경질의 강도가 조금 약해지면 그때 '우리 00 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애 많이 쓰느라 고생이 참 많아." "너 유치원 때 같으면 떼쓰는 거 지금보다 훨씬 더했을 텐데, 많이 컸네 우리 00이!!!" 이렇게 격려해 주세요.


그리고 또 중요한 점은 사람 사이에도 궁합이라는 게 있어서 친구도 선생님도 나랑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 나타날 때도 있고, 궁합이 잘 안 맞는 사람이 나타날 때도 있다는 걸 이야기해 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그저 궁합이 잘 안 맞을 뿐이었다고 기억하면 아이들이 나와 다른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훨씬 더 마음가짐이 편안해집니다.  '좋은 친구 나쁜 친구' '좋은 선생님 나쁜 선생님' 그렇게 분별심을 갖게 되면 아이 스스로의 마음이 더욱 괴로워질 뿐이지요.  


그리고 어른들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지만 같은 직장에 다녀 계속 부딪혀야 하는 관계라면 서로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당히 '매너'를 지켜서 상대하며 싫은 기색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마음은 항상 일정 거리를 두며 지내려고 애를 쓴다고 이야기해 주셔도 좋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무심결에 '다 큰 어른들도 동료나 낯선 사람들 때문에 불편한 상황이 있구나'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불편함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많이들 겪는 감정이구나.' 그렇게 이해하게 될 겁니다.


자, 이제는 정리를 해드릴 시간입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아래와 같이 짧게 요약해 드릴게요.


'1) 엄마가 너의 감정에 관심은 갖고 있어.' 그런데 '2) 너의 생각이나 감정은 낯선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일 뿐이야.' 그리고 '3) 친구들과 선생님도 의외로 다른 면을 보여줄지 모르니 침착하게 지켜보자.' '4) 이만큼 자라나서 유아기 시절 떼쓰기 울부짖기 하던 시절에 비해 스스로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네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다.'


사연 보내주신 이*희 님!

이 시대의 엄마 역할을 해내시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 땅의 과거 어느 시점에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며 "키워놓으면 지들이 알아서 크는 거지 뭐."라고 하하 호호 웃음을 짓던 시절도 있었다는 걸 말입니다. 연세 지긋하신 어른들끼리 그런 농을 나누던 시절에는 장남 장녀가 얼른 커서 막내 동생 뒷바라지 하는 게 그저 당연한 거라고 믿던 시절이고요.

그렇다고 해서 요즘시절의 엄마 역할을 해냄에 너무 억울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살던 시절 아낙들이 감당해야만 했던 그 밖의 많은 것들을 떠올려보시면 억울함이 좀 덜해지실까요?


그저 이 시절의 엄마로서 겪는 어려움은 이렇게 함께 나누며 침착하게 해결해 나가고, 그렇게 하루하루 자기 역할에 충실하려 애쓴 자기 자신을 대견하게 여겨주면 되는 겁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 2024년 3월 25일, 브런치 작가 최은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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