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워라밸에 대한 칼럼, 그 이후의 이야기

칼럼을 쓰면서, 쓰고 난 후 느낀 이야기입니다

by 김현경

워라밸이 뭐길래

국립중앙도서관 공식 페이지에 워라밸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프리랜서인 내가 ‘워라밸을 알까?’ 싶겠지만 지난 4년간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고 남편, 선후배를 비롯한 회사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워라밸의 의미를 파악했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워라밸이란 퇴근 후의 시간이 보장되는 삶이다. 잡지사 에디터 시절, 마감 기간엔 새벽 퇴근이 다반사였다. 특히, 창간 매체에 있을 땐 한 달에 3주 가까이나 됐다. 아침 6시에 퇴근해서 옷만 갈아입고 출근한 적도 많았다. 정시 퇴근은커녕 생존의 기본인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마감 기간이면 몸 이곳저곳이 삐걱댔다. 금쪽같은 대체 휴무일엔 내과, 정형외과, 치과로 병원 투어를 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없었다. 워라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퇴근 시간을 떠올린 이유였다. 하지만 칼럼은 개인의 경험만으로 쓰면 안 된다. 객관성을 위해 취재도 하고 믿을 수 있는 기관의 각종 연구 자료도 참고해야 한다. N포털 사이트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한다. 퇴근 후, 개인 시간이 보장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가리키기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즐기는지(How much you work, how much you play)’를 워라밸로 규정했다. 내가 생각한 퇴근 후의 시간이 보장되는 삶과 비슷한 맥락이다.



경제 불황에도 워라밸이 우선인 사회

자료를 찾다가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한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연봉이 높지만 야근이 많은 직장과 연봉은 낮지만 야근이 없는 직장 중, 어떤 곳에 취업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대부분이 후자를 택했다는 것. 경제 불황으로 취업(및 재취업)이 어려운데도 회사를 가려서 지원하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워라밸 때문에 그만둔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기성세대와 판이하게 다른 20~30대의 삶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한국 경제의 부흥을 일으킨 기성세대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고달팠다. 삶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할 여유가 없었다. 돈만 많이 주면 야근을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의 20~30대는 기성세대들이 일궈놓은 경제•문화적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고 자신의 가치관을 실현하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게 되었다. 돈보다 자기 계발이 중요하다. 회사가 개인 시간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이 일궈낸 성과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기업 특유의 문화도 한몫했다. 2015년 기준, 한국인의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3번째로 긴 2,113시간이지만 임금 수준은 24번째로 낮은 축에 속했다. 평균 노동시간이 2번째로 짧은 1,412시간이지만 임금 수준은 7번째로 높은 덴마크와 비교되는 수치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회사에 충성하지 않게 되었으며 회사 밖에서 자아실현의 길을 찾게 되었다.



우리의 워라밸은 우리가 지킨다

그렇다면 워라밸은 어떻게 해야 실현될 수 있을까? 취재하면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는 회사 차원에서 워라밸을 보장해주는 것, 다른 하나는 직원들이 워라밸을 쟁취하는 것. 회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 우수한 인재의 유출을 막기 위해 시작된 경우가 많다. 더불어 우수한 인재들을 유입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출퇴근 시간을 유동적으로 설정하거나 퇴근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 대표적이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오후 4시에 퇴근하는 패밀리 데이 제도를 시행했다. 일부 스타트업에서는 회식을 점심시간에 하거나 퇴근할 때 인사를 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퇴근에 대한 경직된 인식을 깨고 있다. 회사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마감 기간이 길었던 회사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선배들과 야근을 줄이려는 고민 끝에 편집장님에게 제안 하나를 했다. 날짜별로 해야 할 일을 사무실 벽에 크게 써놓고 그걸 다 하면 편집장님이 남아있건 말건 개의치 말고 퇴근하자는 것. ‘편집장인 나도 퇴근을 안 했는데 팀원이 먼저 퇴근하냐’며 얄미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할 일을 다 했으니 더 이상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의견이었다. 시행 첫 달에는 편집장님, 선배들을 두고 먼저 퇴근하는 게 어색했지만 익숙해지니 ‘진작 이렇게 할걸’ 싶었다. 선배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물론, 모든 회사가 내가 있던 곳과 같을 순 없다. 하지만 팀원들이 힘을 합쳐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극적인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작게나마 숨통이 트이는 변화들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워라밸까지는 아니어도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는 문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워라밸, 지키고 싶고 지켜야만 하는 가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2017년 더 나은 삶 지수 중 한국의 ‘일과 삶의 균형’ 순위는 38개 가입국 중, 35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회사원들은 다른 나라의 회사원에 비해 일과 삶이 불균형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워라밸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국립중앙도서관에 기고한 <워라밸, 삶의 질이 올라가는 직장 선택의 기준> 칼럼의 조회수가 상당히 높았고 그 결과 N포털 사이트에 메인 페이지에 소개되었다. 내가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던 때는 워라밸에 대한 논의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다. 그래서 퇴사를 통해 워라밸을 되찾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회사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워라밸 보장을 위해 더 노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회사는 두 사람 몫을 한 사람에게, 더 심할 경우 그걸 어떻게 하면 세 사람 몫까지 시킬 수 있을지 궁리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직원에게 과도한 업무를 부과했다. 그로 인해 개인의 삶은 붕괴되었고 근무 의욕도 상실했다. 회사의 생산성은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회사는 생존을 위해 워라밸을 침해하는 사내 문화와 규칙을 개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최근, 근무 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한 근로기준법이 통과됐다.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만 실시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살고, 더 나아가 나라가 건강해진다는 걸 직접 경험했고 해외 여러 사례를 통해 깨달았다. 개인과 회사, 정부가 함께 노력한다면 일과 삶이 균형 잡힌 삶이 가까워질 것이다.



네이버 책문화 카테고리에 소개된 <요즘 직장인 사이에선 '월급보다 워라밸' 대체 뭐길래?> 칼럼. ⓒ김현경

칼럼 전문 읽기

<워라밸, 삶의 질이 올라가는 직장 선택의 기준> (2017.09.27) | 국립중앙도서관 블로그

http://dibrary1004.blog.me/221088874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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