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도, 비주얼도 색다른 한 그릇
오래전부터 오일 파스타가 당겼다. 집에 파스타면이 있었지만 바로 먹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나는 파스타는 같이 들어가는 부재료가 거의 없어서 식감이 조금 아쉽다는 점, 또 하나는 면만 먹기 때문에 포만감이 크지 않아 식사를 마치고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허기가 밀려온다는 점이다. 포만감을 해결하기 위해 면의 양을 늘리자니 열량도 걱정되고 탄수화물을 과하게 섭취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이번에도 그냥 참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참아왔던 기간이 너무 길어서 이제는 한계점이 다다랐다. 이왕 먹을 거 조금 색다르고 건강하게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마침, 어묵볶음에 넣을 당근과 무침을 만들려던 시금치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어묵도 있다. 반찬 만들려고 사둔 건데 이것도 파스타에 넣어볼까?
‘건강하게’와는 조금 거리가 멀지만 어묵을 넣기로 결정했다. 어묵의 쫄깃한 식감이 파스타의 맛을 풍성하게 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 혼자 산다>에서 본 라면에 어묵을 넣고 끓여 먹는 장면도 떠올랐다. 모든 재료는 면처럼 가늘고 길쭉하게 썰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재료가 익는 시간이 비슷해지고 조리도 조금 수월해질 것 같다. 시금치는 밑부분만 잘라냈고, 어묵과 당근은 최대한 가늘게 썰었다. 마늘은 편 썰었다. 매콤한 맛을 위해 페퍼론치노를 꺼내 잘게 부쉈다. 재료 손질을 마친 후, 면을 삶았다. 동시에 팬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과 페퍼론치노를 볶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딱딱한 당근을 먼저 볶고 면과 면수, 어묵을 추가했다. 면이 거의 다 익을 때쯤 마지막으로 시금치를 넣었다. 평소에 시금치무침을 만들 때, 시금치를 푹 익히기보다는 살짝만 익히는 편이다. 시금치를 마지막으로 넣은 건 시금치를 팬의 여열로 숨만 죽일 정도로 익히기 위함이다. 면으로 시금치를 덮은 후, 바로 불을 끈 채로 두고 그릇을 꺼냈다. 그동안 시금치가 내 입맛에 맞게 적당히 익었다.
어묵으로 인해 건강한 파스타를 만드는 건 실패했지만 그래도 맛과 비주얼 측면에서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한 그릇이다. 특히, 늘 2% 부족하다고 느꼈던 파스타의 식감이 다채로워진 점이 마음에 든다. 당근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당근 케이크가 아니면 특별히 먹을 일이 없는 당근도 이렇게라도 먹게 돼 다행이다. 기름으로 볶으면 영양소의 흡수율도 높아진다니 일석이조다. 면을 따라 같이 올라오는 길쭉한 당근을 오독오독 씹으며 느껴지는 그 풍미가 마음에 든다. 어묵도 늘 반찬이나 국으로만 먹다가 파스타 다음으로 비중이 큰 부재료로 맛보니 이색적이다. 게다가 향긋한 시금치, 중독성 강한 마늘, 입맛 돋우는 페퍼론치노까지 더해지니 면이 쉴 새 없이 들어간다. 어묵을 넣기 때문에 면은 평소보다 적게 (평소의 2/3 분량) 삶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배가 정말 많이 불렀을 것 같다. 아마 그랬다면 ‘오늘 과식했다’는 죄책감에 지금처럼 이 요리를 즐겁게 회상할 수 없었을 거다. 제철 채소를 즐기고 싶을 때나 요리하고 남은 채소가 있을 때, 뭔가 허전한 식감을 채우고 싶을 때 오늘의 요리를 응용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