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솜씨를 감춰주는 제철 쑥의 맛
4년 전쯤이었을까? 봄 제철 요리를 소개하는 칼럼을 맡으면서 쑥버무리를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은 쑥으로 개떡을 해 먹기 때문에 조금 낯선 음식이었다. 요리 선생님께서 완성한 쑥버무리를 한입 먹어봤는데 식감이 참 재미있었다. 포슬포슬하고 쫀득쫀득한 느낌이 적어서 떡 특유의 묵직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부담 없이 먹기에도 좋았다. 쑥의 향도 산뜻해서 신선한 샐러드 같기도 했다. 원고를 정리하며 레시피를 다시 살펴보니 어렵지 않았다. 쑥을 씻고 쌀가루와 버무려서 찌기만 하면 됐다. 송편 등 다른 떡처럼 반죽을 할 필요도 없다. 나도 쉽게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내년 봄에는 직접 만들어야지’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일이 몰려서, 깜빡 잊어서, 쑥 파는 곳을 못 찾아서… 등의 이유로 마음만 먹은 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바탕 원고 마감을 마치고 간 마트에서 쑥을 발견했다.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쑥 손질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취재할 땐 요리 선생님께서 미리 쑥을 손질해놓으셔서 잘 몰랐던 부분이다. 자그마한 잎을 일일이 보며 다듬어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에 찬물을 오래 쓰니 손도 시렸다. ‘대충 하자’는 마음의 소리에 따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첫 쑥버무리’이기에 꾹 참았다. 손질을 마친 쑥을 큼직한 볼에 옮겨 담고 밀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서 버무렸다. (제대로 된 방식을 따르려면 쌀가루를 넣어야 하지만 마트에서 쑥을 발견했을 당시, 드디어 쑥버무리를 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쌀가루까지는 미처 챙기지 못했다.) 설탕도 솔솔 뿌렸다. 쑥의 물기를 털어낼 때 일부러 조금 남겼더니 쑥과 가루들이 서로 착 달라붙어서 한 덩어리로 느슨하게 뭉쳤다. 그리고 평평하게 잘 펴서 찜기로 쪘다. 10분 정도 지나니 냄비에서 쑥향이 났다. 건강한 기운이 집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다.
20분쯤 지났다. 뚜껑을 열었다.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쑥의 향이 나를 에워싸는데 겨우내 찌뿌둥했던 몸과 마음을 깨워주는 듯해서, 또 한 번은 초록빛 쑥 위에 흰 눈이 내려앉은 것 같은, 일반적인 쑥버무리와는 그 모습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끓는 물에 쑥을 데친 것처럼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귀퉁이를 살짝 떼어 맛봤는데 ‘이건 이대로 맛이 괜찮네?’ 싶어 접시에 옮겼다. 전에 먹은 쑥버무리가 백설기를 잘게 부숴 쑥과 버무린 맛이라면 내가 만든 쑥버무리는 쫀쫀한 쑥 부침개에 가깝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봄의 영양과 풍미를 한껏 품은 쑥 그 자체로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최근, 재료 고유의 향을 음미하며 음식을 먹은 게 언젠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쑥버무리 덕분에 느긋하게 쑥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었다. 칼럼에서 ‘제철 재료는 영양소도, 맛도 풍부하다’는 말을 수없이 써놓고선 정작 나는 제철을 놓쳐서 실천하지 못했던 지난 일상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바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일상에 아주 작은 틈을 만들어 그 시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을 챙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