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 일기

방은 정신의 상태라고 생각해

J가 말했다

by 김알람

2023년 3월 24일


오늘은 방 정리를 시작했다. 많은 걸 하진 못했고 아무렇게나 옷이 쑤셔 박혀있던 서랍장에서 안 입는 옷들을 골라 처분했다. 그것만 하는데도 몇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옛날부터 나는 방정리를 못했다. 고등학생 때는 기숙사에 살았는데, 캐비닛 하나와 침대뿐인 공간도 그렇게 알차게(?) 어질렀었다. 그래도 학생 때는 학기마다 강제로 이사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짐을 간소화하는 나름의 버릇이 있었다. 무거운 살림살이를 들고 왔다 갔다 하기 귀찮았던 본능에, 물건을 쌓아놓는 본능이 진 셈이다.


하지만 집에 있는 내 방은 10년째 그 위치 그대로다. 이사 갈 필요가 없다! 짐을 옮길 일이 없으니 3년간 간신히 피워냈던 '버리기'의 재능도 금세 시들어버렸다. 자리가 나야 정리를 할 텐데, 모든 것이 들어있는 우주와 같은 서랍들을 하나씩 꺼내보면 이것도 쓸만해 보이고 저것도 쓸만해 보인다. 결국엔 방을 정리하겠다는 초기의 목적도 잊은 채 추억의 물건들을 꺼내보면 속절없이 시간만 간다.


물건만 쌓아두는 건 아니고 옷도 쌓아둔다. 옷을 산 적이 없는데 왜 옷장은 미어터지는지. 수납할 곳 없이 쌓이기만 하는 살림살이는 그때마다 질서 없이 아무 데나 쌓이고, 점점 내 방은 이게 창곤지 방인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더러운 방.JPG 그리고 내 방은 점점 더 더러워져 걷잡을 수 없이 변해버렸다


싱크대에 설거지 거리가 없으면 왠지 모르게 내가 먹은 그릇도 깨끗이 씻어놔야 될 것 같고, 길거리에 쓰레기가 없으면 호주머니에서 떨어진 영수증도 금방 줍게 된다. 반대로 설거지거리가 넘치면 슬쩍 내 것도 놓게 되고, 길바닥이 쓰레기장이면 쓰레기가 떨어져도 줍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내 방도 그랬다. 처음에는 물건만 쌓아놓았는데 점점 쓰레기가 쌓였다. 책상마저 쓰레기가 창궐하니 책상에 앉을 일을 할 때면 거실의 식탁을 이용하거나 카페로 나갔다. 외출에는 샤워라는 큰 난관(?)이 있기 때문에 씻기 귀찮을 때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 일쑤였다.


방은 정신의 상태다


어쩌면 이름 모를 유명인의 말 일수도 있지만, 내게 이 말을 한 것은 친구 J다. 시간이 없어 집 정리를 하기가 힘들어 청소부 아주머니를 부른다는 J. 내가 놀라자 J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방이 정신 상태를 보여준다고 생각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집, 자신의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일상이 너무 바빠 집에서 잠만 자는 사람도 눈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자기 방의 상태다. 나처럼 책상 위를 무법천지로 만들어놓으면 방 안에서는 공부도 힘들다. 짐더미를 옆으로 밀어 넣고 노트북으로 강의를 듣다 보면 더러운 책상이 신경 쓰이고, 노트북을 침대로 가져가 강의를 들으면 오래 지속하기가 어렵다. 처음엔 게으른 사람이기에 방을 더럽혔지만, 이제는 더러운 방이 나를 게으르고 불성실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방 정리를 시작했다. 오늘 치운 것은 옷 서랍뿐이라 보기에 큰 변화가 있진 않았다. 다음의 목표는 책상이다. 책상이 깨끗해지면 침대에서 누워있기 말고도 더 많은 일을 내 방에서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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