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인 보드게임 모임일이었다. 오후 12시 반에 만나 오후 10시 반까지 함께 보드게임을 했다. 플레이했던 게임은 <그랜드 오스트리아 호텔>과 <디텍티브 시즌 1>. 협력게임이던 <디텍티브 시즌 1>은 내가 추리 보드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줬고, <그랜드 오스트리아 호텔>은 나에게 뜻밖의 1승을 가져다줬다. 게임을 즐기긴 하지만 1등을 해 본 적은 거의 없는 나에게 큰 선물이다.
이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보드게임 모임의 구성원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나, 내 친구의 대학 지인, 내 친구의 대학 지인의 추리 게임 지인, 그리고 오늘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모임의 멤버 중 하나인 나의 (이제는) 전 직장 동료.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관계가 '보드 게임'이라는 중심축으로 연결되었고, 잦은 만남은 인간관계까지 끈끈하게 만들어 이제는 서로의 현재 상황과 고민까지 공유하곤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이 시대의 중요 키워드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전에는 전공에 대한 심도 깊은 지식과 기술만 있으면 충분하다 여겼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회사가 직원에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요구한다. 산업과 직종이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회사의 중책을 맡을수록 요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수준도 높아진다. 팀 리더와 회사 임원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한 콘텐츠가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이것에 얼마나 열광하는지, 그리고 그 능력을 가지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의사소통) 능력은 팀원들의 관계를 단단하게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조직이 꼭 수평적인 조직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사소통이란 단어 안에는 설득과 납득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그 조직의 구성원은 '내가 무슨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다 좋은 얘기지만, 내가 생각하는커뮤니케이션의 더 중요한 기능은 바로 연결이다. 팀과 팀을 연결하고,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능력. 나에게 필요한 사람에게 요청하여 연결되어 무언가를 같이 하는 능력. 그리고 타인의 요청을 받아들여 함께 일하는 능력. 내가 생각하기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결국 '사교'다.
나와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과 연결하는 능력
사교 :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사귐
나는 스스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나는 사람과의 연결에 방어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소극적이고,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의 끈을 두텁게 만드는데 게으르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변명해 보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 자신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은 대부분 자신만의 논리가 강한 편이다. (난 아니야!라고 생각한다면 미안하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당연하다. 나 자신만이 있는 세계는 그 자체로 완전하니까. 가끔은외로움도 느끼지만 찰나에 불과하고, 일부는 다른 사람을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며 자기 위안 삼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타인을 보잘것없다 생각하는 바로 그 방식으로 타인이 나를 판단할까 무서워 더더욱 내면의 세계로 파고든다. 그곳에서 안심하는 동시에 기다리고 있다. 누구를? 그 고독한 세계에서 나를 꺼내줄 누군가를.
영화 <아가씨>에서의 히데코처럼,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를 기다린다.
그리고 여기, 놀랍지도 않은 진실이 있다. 자신을 제외하면 누구도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연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MBTI E에게 간택받은 I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한쪽의 일방적인 시도는 '접촉'은 될 수 있어도 '연결'은 될 수 없다. 인연이 이어졌다면 간택받았다는 I도 연결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는 뜻이다. 그게 누군가의 눈에는 어설퍼 보여도. 스스로만으로 가득 찬 혼자된 세계를 깨려는 계속된 노력이 있었다는 거다.
나에게는 예외적인 연결이었던 보드게임 모임을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알 깨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고자 했던 말은 인간은 연결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결이란 건 다른 능력과 마찬가지로 안 해봤으면 힘들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고, 굉장히 불편하기 짝이 없다. 대부분은 이 불편함을 쉽게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끊어버린다.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에게 처음엔 무지막지한 불편을 안겨주었던 보드게임 모임. 이 모임이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잘 모르는 인간들을 만나는 '불편'보다도 보드게임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더 컸기 때문이다. 연결을 시도하기 힘들다면 지금 내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주제를 찾아 모임이 있는지 찾아보자. 그리고 한 번 가 봤는데 죽을 것 같지 않으면 다시 또 한 번 가보자. 나는 내 죽어버린 연결 세포를 이런 방법으로 다시 살려볼 생각이다. 불편하겠지만 외롭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