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별은 지기 시작한다
2023년 4월 12일
현재 시간 오전 12시 55분. 12일의 일기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새벽에 쓰고 있다. 오늘도 인터넷 강의와 미드저니 이미지 생성으로 점철된 하루를 보냈고, 3월 말부터 4월 12일까지 미친 듯이 재미있게 느껴지던 ai로 그림 만들기가 약간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욕심과 조바심은 세트
시들해졌다기보다 약간은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재미있게도, 무엇이든 재미로 시작하면 흥미만 존재하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싹트면 조바심의 씨앗도 함께 심긴다.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거다. 그리고 조바심이 싹트면 흥미란 싹은 양분을 빼앗기고 점차 시들시들해진다. 적신호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흥미를 유지할 수 있을까? 거리 두기다. 흥미를 잃기 전에 그만둬 버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흥미 잃지 않기다!라는 괴변을 말하는 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리 두기는 그 일에 쏟는 절대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관심이 생겨 열정에 불타면 머릿속은 그것으로 가득 차게 된다. 우리의 무의식은 정신의 일부분을 항상 그것에 할당해 놓아서 때때로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다가도 그것에 대한 생각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맥락 없는 등장은 우리의 일상에 생기를 북돋는다. 헬스에 흥미를 붙였을 적, 운동에 대한 생각이 업무 중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그건 지루한 일상에 쪼그라든 내 정신을 환기해 주는 긍정적이 역할을 하곤 했다.
흥미는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이 흥미로운 일에 과도하게 사로잡히면, 놀랍게도 이 흥미는 죽어버린다. 물약을 자동충전해 놓은 게임 캐릭터를 생각해 보자. 이제부터 얘가 흥미다. 흥미를 키우기 위해선 전투경험(열정)이 필요하다.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적당히 맞으면 자동충전된 물약이 사용돼서 hp는 차오른다. 그러면 캐릭터를 죽이지 않고 계속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빠른 레벨 업이 욕심 나서 고레벨 사냥터에서 깔짝이다보면 고레벨 몬스터에게 묵직한 공격을 당해 금세 죽어버리곤 한다. 물약 자동충전을 해 놨는데도 말이다. hp가 차오르는 속도보다 더 강한 공격을 받아 캐릭터가 죽는 현상. 나는 이것이 과도한 욕심이 흥미를 죽이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저레벨 사냥터에서만 사냥을 하면 캐릭터는 크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레벨 사냥터에서만 있으면 우리의 캐릭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죽는다. 그리고 한번 죽은 흥미는 죽기 전 상태로 부활하지 않는다. 되살아난 흥미는 경험치도 깎이고 아이템도 드롭한 상태다. 일종의 패널티다.
결국 무엇이든지 밸런스가 중요하다. 과도한 열정은 욕심을 부르고, 욕심은 흥미를 죽게 한다. 한 번 죽은 흥미는 되살릴 수 있지만 패널티를 받게 된다. 사실 나는 2년 동안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전무한 상태로 무채색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오랜만에 느낀 '재밌음'에 더더욱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그 과도한 몰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친한 친구일수록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일일수록 거리를 유지해야겠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싶진 않으니까. 이만 오늘의 일기를 마친다. 다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