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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티 Sep 07. 2021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네덜란드 농장 체류기 2


이 농장에 상주하는 노동자는 나를 포함해 총 4명이었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네덜란드 사람들 두세 명씩 와서 일을 돕곤 했다. 

그들은 사회 부적응자? 정신질환자?로 농장에 와서 간단한 일을 하며 

교화? 재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교화시설로 유서 깊은 마을의 전통을 잇는 프로그램의 일환인 듯했다.


어느 날 우리 넷 중에 가장 오래 농장에 있었던 동료 D가 비밀을 하나 알려주었는데 

이 농장은 그 교화 프로그램 운영비로 쓸 지원금을 받아 우리 상주 노동자들의 식비로 쓴다는 것이다. 

지원금을 밥값으로 써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유인하다니. 

삼시 세끼와 무제한 간식을 먹으며 이 친절함이 어디서 났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그 비밀을 알아버린 것이다. 


묘하게 불법스러운 농장 운영 구조를 알아버린 나는 좀 더 열심히 많이 먹기 시작했다. 

친절한 주인은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적으면 곧이곧대로 사줬기 때문에 

우리는 아보카도와 같은 사치품도 적어내며 위장이 빌 틈이 없이 먹어댔다.

그들의 계획대로 우리는 잘 먹고 열심히 일하는 최상급 노동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농장주는 양심적인 노동 일과를 제공했다. 

우리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는데 한 번에 두 시간 이상 일하지 않았다.

지치기 시작할 때쯤이면 주인 L씨가 커피 타임! 을 외쳤고

그러면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공용 거실로 가서 차와 간식을 먹었다. 

그렇게 삼십 분을 쉬고 다시 일을 하러 가는 것을 세 번 정도 반복하면 하루가 끝이 나는  

아주 적절한 노동-휴식 밸런스가 맞춰진 것이다.


마늘이 익어가는 계절, 한여름


농장 일은 주로 잡초 뽑기와 작물 수확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마늘이 수확기를 맞아서 2,3일간은 마늘 작업만 했다.

트랙터로 밭을 한번 갈아서 땅을 부드럽게 만든 다음에 

거대한 포크 같은 걸로 삽질을 하여 마늘을 뽑아냈다. 

그다음엔 마늘 알이 있는 뿌리만 남기고 잘라서 망이 달린 박스에 담고 저온 보관소에 넣었다. 


친절한 주인 L 씨는 작고 비실한 아시안 걸인 나에게 비교적 힘이 덜 드는 작업을 주로 시켰다. 

건장한 청년들이 포크로 마늘을 뽑아주면 나는 한쪽에서 마늘을 자르고 

마늘 품종에 따라 이름표를 붙이는 작업 같은 것을 했다. 

십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마늘 품종이 있었는데 그중 코리안 갈릭도 있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 아무도 코리안 갈릭과 코리안 걸에 대해 농담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들 기본 예의가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한국인 한 명이 일 년간 섭취하는 마늘 양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걸며 친해지고자 굳이 애를 쓰지 않았지만 

작렬하는 햇볕에 화상을 입은 서로의 팔을 걱정해주고

모기가 들끓는 연못을 욕하고 모기 스프레이를 빌려주기도 하고

하루 일과가 끝나고 밭에서 집까지 트랙터를 타고 오며 안 걸어서 좋다고 웃었다.

우리는 국적도 나이도 달랐지만

육체노동의 피로로 다져지는 친밀감은 그 모든 것을 초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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