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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티 Sep 18. 2021

체험 중세 유럽의 삶

네덜란드 농장 체류기 4


세상 사는 게 어디나 똑같다고 하지만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끼리도 천차만별인 것을 

산 건너 물 건너 사람들은 얼마나 다른지 그들과 살면서 몸소 체험해 볼 수 있었다.


내가 본 유럽 사람들은 17세기쯤의 과학으로도 만족하는 듯 했는데

방충망의 부재와 열쇠 사랑이 그 증거다.

그들은 방충망이 달린 못생긴 창문 대신 벌레를 택했다.

이 농장은 안 그래도 벌레 많은 시골에 인공 연못을 더해 벌레 인큐베이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공용 거실에서 쉬고 있으면 파리가 미친 듯이 사람한테 달라붙어서 

어느 주말 오후 우리는 종이를 접어서 파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 안쓰러운 모습을 본 주인장은 파리 잡는 끈끈이를 천창에 붙여줬다. 

하루 만에 파리시체로 시꺼멓게 변한 끈끈이를 바라보며 느끼는 바가 없는지..?




파리 소굴인 공용 거실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트레일러는 더 끔찍했기 때문이다.

그때 유럽은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을 겪고 있었고 점심에 잠시 트레일러에 들어가면 

뻥을 조금 보태서 칫솔이 휠 정도로 뜨거웠다.

초반에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창문을 열면 빨리 식을까 해서 방충망less 창문을 열어놓았는데 

밤에 들어가보니 트레일러가 모기 소굴이 되어있었다. 

그날 뒤로는 창문을 꼭 닫아 놓고 낮에는 트레일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것 때문이기도 했고 와이파이와 화장실 같은 문명시설이 공용거실에만 있어서 

트레일러는 정말 잠만 자는 곳이었다. 


70℃로 예열된 나의 작고 귀여운 오븐


조금 외딴 지역에 있는지라 당연히 문을 항상 열어놓고 지내는 줄 알았는데 

어느날 아침 일찍 해뜨자마자 공용거실에 갔는데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나는 문 여는 법을 몰라서 다시 오븐으로 돌아갔고 나중에 동료에게 열쇠 위치를 전해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창고에 가보니 박물관에 있을 법한 정말 거대하고 투박한 열쇠가 있었다. 

그 문에 도어락이 있는 것도 안 어울렸겠지만

그래도 이런 열쇠를 21세기에 생산한다는 것이 놀라웠을 뿐이다.

영국에서도 현관문 열쇠, 내 방 열쇠, 체육관 보관함 열쇠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던 걸 떠올려보면

유럽인들은 지문인식과 도어락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 아닐까?


비밀의 방도 음성인식인데




우리는 특별한 일(독 있는 풀 자르기)이 아니면 맨손으로 일했다.

창고에 장갑이 있었지만 아무도 장갑을 안 쓰길래 나 혼자 양반인 척할 수 없었다.

잡초를 뽑아도 감자를 캐도 가지치기를 해도 맨손이었는데 

그러다 어떤 풀을 만져 손 전체에 가시가 박히기도 했다.

유인원의 진화 과정을 거치듯 나중엔 가시 안박히게 뽑는 스킬을 터득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종일 일하고 나면 흙범벅이 된 손을 구두솔로 벅벅 닦는데

사람의 피부가 얼마나 내구성이 좋은 양질의 가죽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장갑도 호미도 없이 맨손으로 주저앉아 잡초를 뽑고 있자니

서양 가드너들이 왜 호미에 환장한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에게 꼴사납지만 무릎 건강을 챙겨주는 엉덩이 의자를 보여주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진정한 농업혁명




몸을 함부로 쓰는 유럽인들 답게 먹는 것도 어딘가 수상했는데

어느 날 주인장은 직접 잡아 온 고등어를 훈제했다고 와서 먹어보라고 했다.

가보니 나무통 안에 있는 고등어는 여전히 등이 너무나 푸르렀고

나무통 안은 시꺼멨는데 그것이 재인지 때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주인장의 전적으로 보아 때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왜냐면 농장 한구석에 시꺼먼 구정물이 담긴 욕조가 있는데

거기에 D와 A가 비료를 퍼다 나른 똥삽을 헹구자 

주인장이 거기는 손 씻는 곳이라 농기계를 씻으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간 뒤에 우리 셋은 그가 이 똥물에 손을 씻고 있었단 사실에 놀라 수군거렸다.

옆에 농수이긴 하지만 맑은 물이 나오는 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등푸른 고등어를 넘어 충격의 샐러드도 있었는데 

유러피안 A가 만든 샐러드에는 가열하지 않은 생버섯과 흙이 씹히는 상추 그리고 공벌레가 있었다. 

버섯을 생으로 먹어도 되는 것인지 

상추의 아삭함과 공벌레의 아삭함을 내가 구분했었을지 심란한 식사였다.

그렇지만 그때쯤 유럽의 모든 것을 포용한 나는 공벌레를 식탁 밑으로 던져버리고 나머지 샐러드를 먹었다.

의심스러운 식사에도 불구하고 식중독에 걸리지 않았으니 

옛날에는 애들이 다 흙 먹고 자라서 건강했다는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원래 더럽게 만들수록 맛있음



이제는 만천하에 알려진 서양의 전근대적 생활방식과 위생관념

그건 모두 사실이었다.

나도 한 더러움 하는 사람인데 그곳에 가니 내가 이곳의 세스코요 식품안전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어떻게 2주나 버틸 수 있었냐면

그곳에서 내가 농업의 참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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