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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티 Sep 23. 2021

엄마 나 농부가 될래요

네덜란드 농장 체류기 5

이제까지는 농장 가서 잡초만 뽑다 왔지 라고 생각했는데

쓰고 보니 꽤 여러 가지 일을 했었다.

잡초뽑기는 기본이고

잔디 깎기

화단 정리

가지치기

풀 자르기

그리고 작물을 수확할 때 생기는 온갖 잡다한 일까지 

친절한 주인장은 우리가 일에 질려 탈주할 것을 염려한 것마냥 

조금씩 다양한 일을 주었다. 


첫날에는 잡초를 뽑았다. 

주인장은 날이 달린 막대기로 큰 잡초를 제거하는 법을 알려줬는데

보기엔 쉬워 보여도 스킬이 꽤나 필요한 일이었다. 

막대기로 땅을 긁으면 됐는데 내가 하면 먼지만 나고 잡초는 제대로 뽑히지 않았다.

뿌리가 땅 밖으로 완전히 나와야 잡초가 다시 자라지 않는다고 했는데

땅이 단단한 건지 잘 긁히지도 않았고 이파리만 떼어지고 뿌리는 그대로 땅속에 있었다.

그래서 도구를 들고도 결국엔 안 뽑힌 잡초를 손으로 마저 뽑아야 했다.


영 시원치 않은 일꾼의 모습을 보여서인지 

그 다음 시간에는 손으로 잡초를 뽑았다.

당근과 비트밭이었던 것 같은데

주인장은 당근 이파리 냄새가 날리면 벌레가 찾아온다고 

이파리를 건드리지 않게 주의하라고 했다.

참 신기하다고 생각해서 엄마한테 알려줬더니 

그럼 바람 불면 벌레 천지 되겠다고 그런 게 어딨냐고 해서 

우리에게 그런말을 한 주인장의 심보가 궁금해졌다. 


아무튼 

손으로 잡초 뽑는 일은 가시 달린 풀을 주의하는 것만 빼면 비교적 쉬웠다. 

특별한 스킬이 없어도 손가락 두 개만 있으면 가능한 일인데

잡초가 한 번에 뿌리까지 뽑히면 피지를 짜내는 듯한 쾌감을 느낄 수 있고

잡초를 다 제거한 다음에 작물만 곱게 남겨진 밭을 보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아스파라거스 살아생전 모습


농사든 가드닝이든 세상만사든 뭐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게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풀을 잘라냈다.

미드에서만 보던 잔디깎는 기계로 밭과 밭 사이에 자란 잔디를 밀었고

버려진 화분에 잔뜩 자란 풀을 걷어내서 새 작물을 심을 수 있게 화단을 재정비하고

노랗게 자란 풀의 꽃을 자르기도 했다. 

말에게 주는 풀인데 꽃에는 독이 있다고 했다. 

애초에 무독성 풀을 먹으면 될 것 같은데

사람이 복어를 먹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그런 스릴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겠지


그리고 식물 미로를 예쁘게 다듬는 일도 했다. 

미로를 이루는 수풀이 꽤 높아서 건장하고 키 큰 청년들이 예초기로 웃자란 가지들을 쳐내면 

나는 빗자루를 들고 떨어진 가지를 쓸어 손수레에 담았다.

그렇게 필요 없는 풀들을 모아 농장 한 쪽에 버렸는데 

그 풀들이 모여 산을 이룬 것을 보면 내 몸에 노폐물을 빼놓은 것마냥 개운했다.


마카다미아 하와이에서만 열리는 건 줄 알았다 (원산지:호주)                                


하지만 마늘을 한번 뽑고 나니 작물 수확의 기쁨은 

잡초더미를 보며 느끼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하루종일 마늘을 잘라 손이 가위 모양으로 굽어도 

수많은 마늘박스로 꽉 찬 저온 창고를 보면 그렇게 뿌듯했다.

내가 먹을 것도 아니고 판 돈을 내가 가질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늘 외에도 잡초 옆에서 자라고 있는 온갖 채소를 보며

처음으로 작물을 재배했을 때 원시 인류들이 얼마나 기뻐했을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잘 익은 채소를 따는 것은 귀족의 목을 따는 것만큼 짜릿해서 농업혁명이라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울퉁불퉁 멋진 몸매


밭에서 일하는 것 말고도 가끔은 닭이 마시는 물을 갈아주는 등 작은 심부름을 했다.

건장한 청년들에게는 가끔 말똥을 밭에 뿌리라거나 하는 추가 업무가 있었지만 

작고 비실한 나는 그 시간에 잡초를 또 뽑거나 저녁 요리를 만드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빨간머리 앤의 20세기 미국의 전원생활에 꽂혀있던 어린 나는  

십수 년 후 농장 생활을 위한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재밌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농장에 온 지 사나흘이 지났을 때쯤 

샤워를 하다 거울을 봤는데 

목에는 옷 자국이 옆통수에는 안경다리 자국이  

잘 탄 이마에는 허연 헤어라인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다음 날부터 묵혀놨던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트레일러를 나섰다. 


그리고 며칠 뒤 갑자기 더워지는 날씨에 소매를 걷고 일을 했는데

저녁에 팔이 미친 듯이 따가워서 보니까 걷은 자국 그대로 햇볕 화상을 입었다.  

고무장갑 낀 것마냥 타버린 손이 원상복구 되는 데는 일 년이 넘게 걸렸다. 

그 자국이 농장에서 가져온 유일한 기념품이 되어버렸다.


나의 첫 타투 by S.U.N


타버린 팔도 아팠고 

하루종일 쭈그려 앉아 일한 날에는 무릎도 아프고 

내게 맞는 장화가 없어서 큰 장화를 신고 걸어 다녀서 발가락이 쓸려서 아프기도 했다. 

그렇지만 주인장이 적절하게 쉴 수 있게 해줘서인지

하루가 지나도 안 풀리는 피로는 없었다.


그리고 자유로운 유로피안들이 모인 곳이어서 그런지 

우리는 각자 음악을 들으며 일할 수 있었다. 

가끔씩 밭을 돌아보면 D가 삽질을 하며 랩을 흥얼거리고  

A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리듬을 타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서 고심해서 고른 노동요를 들으며 신나게 잡초를 뽑았다.

멀리서 보면 한때 유행했었다는 사일렌트 디스코 같았을 것이다.


지휘하는 주인장과 일꾼들



그렇게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밭에 가서 일하고 

때가 되면 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가

다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을 먹고 자는 평화로운 일상을 반복했다.

여행도 피곤하게 돌아다니는 나에게는 

이런 농장 생활이 약간의 노동이 곁들여진 일종의 리조트였던 셈. 


아무리 잡일이라고 해도 내가 한 일이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도 아주 좋았다.

내가 잡초를 뽑아 깨끗해진 밭과

내가 수확한 마늘이 담긴 상자가 층층이 쌓인 창고를 보면

그날의 피로와 맞바꾼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농사가 생계가 되면 날씨 걱정에 작물 상태 걱정에 신경쓸 게 많아서 

밭에 나가는 일이 그다지 즐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잠깐이나마 농사의 맛을 보니 

왜 모든 것을 때려치고 귀농하는 젊은 사람들이 있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나도 육체노동의 고통과 정신노동의 스트레스 사이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전자를 고를 것이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그러나 한창 일이 할 만해져 즐거운 농촌 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쯤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으니

취미가 일이 되고 

체험이 삶이 되면 

그렇게 다시 웃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감자가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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