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생각이 나는 사랑

by 미래

헤어지고 나서 그 사람 보고 싶었던 적 있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대부분의 주제는 현실 그리고 남자 얘기였다. 아무리 발 버둥쳐도 제자리인 듯한 현실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한 참 얘기하다 끝도 없는 막막함에 돌린 대화는 남자 친구 혹은 전 남자 친구 혹은 미래의 남자 친구에 관한 얘기였다. 현실에 관해 얘기할 때보다 이야깃거리라 다양했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기 딱 좋은 주제였다. 미운만큼 욕도 했다가 종종 칭찬도 하며 여전히 사랑을 확인하고 있었고, 사랑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역시 인생은 여행 아니면 사랑이었다.


사랑했던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지만 결코 잊어지지는 않았다. 늘 그와의 이야기도 술자리 빠지지 않는 안주였다.

사람에 대한 인간이 기억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슬픔을 받아들이는 5단계와 비슷했다. 헤어지고 며칠은 헤어진 사실에 대해 부정했다. 이대로 끝났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몇 주 후에는 왜 헤어져야 하는지, 왜 그런 말들이 오갔는지에 대해 분노했다. 현실에 대한 부정이 사람에 대한 분노로 변해갔다. 또 몇 주 후에는 지난 삶을 반성하고 후회했다. '만일 ~이랬다면' 헤어지지 않았을까 타협도 했다. 삶의 의미를 잃을 정도로 절망도 했다 몇 달이 지나 이별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잊으려고 애를 써도 잊어지지 않다가, 이별한 현실을 수용하고 나서야 그 기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잊으려고 노력을 하지 않아도 가끔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와 같던 곳을 우연히 지나쳤을 때, 지인으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맘에 들어하던 옷을 다시 꺼내 입을 때... 얄궂게도 갑작스레 떠오른 기억에 가슴이 쓰렸지만,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때론 사랑했던 이야기는 종종 미화돼도 했다. 분노하고 증오했지만 아련한 추억, 소중한 경험 등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 미화가 필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었던 건 사랑을 할 때의 웃음, 설렘, 행복이 이별의 아픔보다 더 짙어서였지 않을까.

우리에게 첫사랑이 그토록 오래 기억되는 이유가 첫 이별에 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그때의 내가 그립기 때문인 것과 같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일은 쉽지만 되돌리는 일은 어렵다. 사랑했던 순간들을, 앳된 모습들을 추억하는 일밖에 없다.


연인이 헤어지고 나서부터가 드라마는 시작 이랬는데, 우리는 헤어지면 철저히 남이었다.

연락 가능성을 모두 차단했고,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우연한 마주침도 상상할 수 없었다.

사랑은 빠지는 것보다 지속하는 게 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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