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해도 보고

by 미래

술은 참 묘하다. 술 먹다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술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하는 것처럼.

먹을 땐 즐거운 데 먹고 나서 후회하게 한다.



술 하나로 참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그 많은 감정을 하나로 담는 게 술이기도 하다.

억울해서 술을 찾고, 슬퍼서 술로 잊고, 기뻐서 술잔을 부딪힌다.

술기운에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술 마시다 싸움이 나기도 한다.


술과 사랑은 참 닮았다.

어느 정도 한계가 지나면 내가 조절하지 못하는 것도,

계속 삼킬수록 즐거운데 그 끝은 항상 후회와 같이 한다는 것도.


술보단 술자리를 좋아했다. 다 함께 흥겹게 노는 것도 재미있지만, 알딸딸해진 정신에 나와 나의 경계를 잃어가는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주량은 셀 수 없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져서 어떤 날에는 한 병도 못 먹고 취기가 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테이블 위에 술 병이 가득할 때까지 마셔도 버틸만했다.



사랑하는 사람, 밤, 맛있는 음식이 함께할 땐 술이 빠질 수 없었다. 나와 달리 그는 술을 한 입도 마시지 못했다. 내 앞엔 소주, 그 앞엔 콜라. 술 잔도 맞들어야 맛이 나는데, 우리 잔은 도무지 맛이 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한 공간에, 내 옆에 있단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헤어지고선 술 먹는 게 더 즐거웠다. 날 위로해주는 말들과 술로 조금씩 잊어가는 기억들, 새벽에 뒤척이지 않고 잠에 들 수 있어서였다. 술 약속은 모닝콜 같은 답장처럼 반가웠다. 헤어지고 나서 우리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지 되뇌었다. 애초에 달랐던 잔처럼 우린 원래 다른 사람이었는데 그걸 모르게 많은 걸 바랐다. 참 어렸다.



취해도 보고 원망도 했지만, 하루하루를 술로 버티며 사는 건 날 더 괴롭게했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아닌가. 앞으로만 가는 시곗바늘처럼 더 열심히 살아야 했다. 그깟 이별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이런 일로 주저 않아 울기만 할 내가 아니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더 힘을 내던 나였다.


사랑을 할 때도 나를 잃어가면서 까지 하지 말자. 밤새 술 마시고 다음 날 힘든 건 오직 나뿐 이니까.

사랑해서 모든 걸 다 줘 버린 사랑 후에 남는 게 빈껍데기뿐인 나라면 의미가 없다.

나로 가득 채운 내가 될 때까지, 온전한 나로 되찾아 오기까지는 너무 오래 걸린다.


술 적당히. 사랑도 적당히.













keyword
이전 18화한 마디면 충분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