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꼭 사소한 걸로 시작했다. 99개의 잘한 일이 있어도 1개의 실수가 더 크게 느껴졌다.
“연락은 미리 해줘” “답장은 왜 안 했어” 는 연인 간 한 번은 내뱉어봤을 말이었다.
사소한 연락 하나에 사람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게 사랑할 때는 맞는 말이었다.
특별히 위험한 일을 하거나 비도덕적인 일을 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괜히 신경이 쓰였다.
정말 궁금해서 한 말이라 해도 연락이 잘 안 되는 날에는 싸움으로 번졌다.
남녀 사이에 연락은 어떤 의미일까. 매번 비슷한 일로 갈등이 시작했고 사람이 바뀐다 해서 달라지는 문제는 아니었다. 단순히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수단일 뿐인 건가 싶기도 했다. 연락하는 속도에 의미를 부여했고 연락의 내용도 중요했다. 단답형의 대화나 성의 없는 이모티콘은 가치가 없었다.
같은 공간에 없어서 인지 말투와 조사 하나에도 미묘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에 온도가 중요하다는 말이 맞았다. 누군가는 100 프로의 마음을 줘도 80 프로만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80프로의 사랑을 줘도 100 프로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사실 노력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사랑에 노력을 들이는 순간 진심이 아닌 게 되어 버리니까.
드라마 <사랑의 온도>에서 ''뭐해''? 의 다른 말은 ''보고 싶어''라고 했다.
내가 그동안 수없이 던졌던 물음 속에는 ''사랑해''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였을지 모른다.
질문이 달라졌다면 우리가 좀 더 사랑하지 않았을까 헤어짐을 좀 더 미루지 않았을까.
그 사랑한단 한 마디가 듣고 싶었을 뿐인데.
그거면 충분했는데.
사랑을 할 땐 상대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감정들이 사랑이라는 말로 용서가 됐고 이해가 됐다. 때론 미워했고 다신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증오도 했으며 연민을 하기도 했다. 사랑에 애원하기도 했고 수치스러웠던 적도 있었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사랑을 했을 뿐인데 수십 개 수백 가지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는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사랑한다는 말은 참 듣기도 하기도 어려웠다.
난 내 주위 모든 것들을 사랑해.
초점도 맞지 않은 사진도, 투박하게 쓴 손편지도, 손때 묻은 인형까지도.
그럼에도 잊지 않고 그중에서 나를 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