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연예인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다. 아이돌 가수가 연기를 하기 시작한 것도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도 꽤 오래됐다. 당연 전 씨름선수 이만기, 강호동을 비롯해 전 농구선수 서장훈처럼 유명한 스포츠 선수들도 이미 방송인으로 자리 잡았다. TV 프로그램 시청자들은 새로운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새로운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화제성도 방송 제작진들도 원하는 목표다.
지금까지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다수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스포츠에서 여러 종목들이 있지만 대중에게 더 친숙한 축구, 농구에서 많은 남성 출연자들이 등장했다. 2002 월드컵의 주역 안정환도 <아빠 어디 가>를 통해 인지도를 높였고, 아이들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박주호 선수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뭉쳐야 찬다>에서는 각 종목을 대표하는 레전드 남성 선수들만 나오기도 했다.
대중적인 종목을 제외하고서도 스포츠 선수들 중에는 여성 선수들도 많다.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대회 등 국제 스포츠 대회를 통해 훌륭한 경기를 보여준 여성 선수들은 좀처럼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굴 보기 드물었다.
하지만 <노는 언니>에서는 다양한 종목의 여성 스포츠 선수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었다. <노는 언니>는 운동만 열중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려온 여성 선수들에게 그동안 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며 같이 '놀아보는 ' 프로그램이다. 매일 훈련하느라 제대로 된 캠핑도 여행도 요리도 해본 적 없고, 자기 종목 말고는 다른 종목에 대해서는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노는 언니>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목적으로 다양하게 경험해 본다.
이렇게 여성 출연자들만 나오는 프로그램은 <언니들의 슬램덩크> 이후로 처음 봤다. 그동안 여성 예능인들이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는 과정에서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전부 여성 출연자만을 앞세우며, 이로 인해 개그우먼부터 많은 여성 예능인들이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입지를 세울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노는 언니>도 모두 종목은 다르지만 여성 운동선수로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못 해봤던 것들을 통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놀이'라는 의미의 재정의
논다는 것의 의미를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편안히 쉬고 있는 것 자체가 노는 것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오래 다녀오기처럼 평소에 쉽게 할 수 없던 특별한 일을 하는 게 노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식의 놀이든 제대로 쉬어 본적도, 놀아본 적도 없는 운동선수들에게는 처음 해보는 모든 것들이 모두 '놀이'였다. '놀이'는 즐기는 데 있었다. 운동선수이기에 경쟁과 승부가 더 익숙하겠지만, 경쟁은 잠시 내려놓고 노는 언니만의 '언림픽'을 통해 같이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때 놀이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놀이'는 사소할수록 그 의미가 커졌다. 같이 요리를 하고 음식을 나눠먹고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게 평범한 일이지만 <노는 언니>들에게는 금메달보다 더 값진 놀이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균형적이고 조화로운 팀
억지로 노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좋아서 노는 느낌이 더 실감 나고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정해진 MC가 진행하지만 <노는 언니>에서는 골프여제 박세리 선수가 맏언니로서 동생들을 이끌기는 하지만 독보적으로 나서는 진행자는 아니다.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고 후배들을 위해 궂은일도 책임 있게 해내는 편에 속한다. 핵심 진행자가 없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노는 콘셉트가 더 잘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종목은 달라도 놀기 위해 뭉친 언니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장면들이 모든 선수들에게 균형적인 힘을 분배하는 것 같다. 통 큰 세리 언니, 만능 펜싱 언니 남현희나 열정 넘치는 유인 언니, 허당 미 있는 유미 언니, 노력하는 막내 민정 언니처럼 각각의 캐릭터가 돋보이고 진행자가 없어도 조화로운 모습들이 더 균형감이 있다. <노는 언니>에서 만큼은 국가 대표'선수'라기보다 동네 언니 같은 친근한 느낌이 있다.
여자 그리고 운동선수
언니들의 대화를 통해 '여성 운동선수'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때론 신체 변화에 더 민감하기도 하고 때론 엄마이기도 한 선수들을 보며 운동선수 이기 전에 여자이자 인간으로서의 고민들을 알 수 있었다. 운동선수이기에 포기하고 살았던 것, 힘든 훈련을 계속해 왔던 것, 슬럼프를 극복하는 일 모두 놓지 않고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언니들의 대화를 통해 여성 운동선수로서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종목을 다르지만 여성이자 운동선수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모습들이 시청자들에게 더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앞으로는 더 많은 여성 운동선수들이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나 밖에서나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는 언니>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양윤서 씨름 선수처럼 더 많은 여성 스포츠 선수들을 이 프로그램에서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