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딘 변화라 해도 <며느라기>

by 미래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아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마음껏 가까워질 수 있는 만남과 좀 더 자유롭게 세상과 호흡하는 것들은 이미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우리는 당연하고도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맞이해야 했고 그 속에서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며느라기>를 보면서도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다 느꼈던 것들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우리가 너무 무책임했음을 깨닫게 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기 전부터도 나는 결혼과는 먼 사람이었다. 결혼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라기에 그 냉담한 현실을 마주할 자신도 없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며느리로서 싹싹하고 애교 있게 대할 줄도 모르고 요리는커녕 집안일에 관심도 없고 잘할 줄도 모른다. 사실 이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며느리는 당연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 노릇을 잘할 수 없음을 스스로 너무 잘 알기에 피하고 있어서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며느리로서의 역할, 가부장적인 관습 아래 며느리들의 현실은 우리가 너무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며느라기는 그 현실을 우리가 마주 보게 함으로써 당연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며느라기(期)는 결혼한 며느리들이 사춘기처럼 겪게 된다는 전국 며느리들의 고민스러운 시기를 담은 웹드라마이다. 한 회당 20분 분량에 12회 차 정도로 짧은 분량 속에서도 완결성을 잘 갖췄다. 짧은 콘텐츠에 익숙해지면서 모바일과 웹을 통해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원작의 스토리를 드라마에 잘 담아냈다.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해 밀도 있게 보여주었고 주변 인물들의 관계와 캐릭터 설정도 완성도를 높였다. 하지만 이 웹드라마를 보면서 며느리로서의 고충과 고민들이 너무 현실적이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드라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말은 옛말이었다. 며느리로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누군가의 과거, 현재, 미래일지 모르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사실 민사린이란 캐릭터는 매력적이진 않지만 응원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행동하는 인물이다. 어떤 사건을 만나 해결하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반드시 목적 있는 행동을 해야 사건이 전개되고, 그때부터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민사린은 다르다. 시댁 가족들 저녁 모임에 밥상을 차리고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곧장 설거지를 한다. 나중에 해도 된다는 농담 반 진담 반 같은 시어머니의 말에도 굳이 '괜찮다'며 '금방 한다'며 싱크대 앞에 선다. 사실 누구나 '조금 있다 하겠다'는 말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다 먹은 식탁 앞에서 엉덩이를 떼고 싶지 않지만 며느리로서 민사린은 해야 할 말을 내뱉지 못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참는다. 주인공으로서 답답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는 없다.


첫째 며느리를 보면서 우리는 오히려 통쾌함을 느낀다. 평소 생각만 하고 하지 못했던 말들은 속 시원히 내뱉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못 하겠다' 말하며, 아이는 베이비시터가 아니라 엄마가 봐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잔소리에도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며 당차게 맞받아친다. 우리가 원하는 해결사 같은 주인공의 모습이다. 남들이 할 수 없는 행동에 적극적이며 자신의 생각을 자신감 있게 하는 말은 너무 이상적일 뿐이다. 이를 보고 통쾌함을 느끼는 우리는 주인공 민사린이 얼마나 현실을 잘 반영한 드라마인지 잘 보여준다. 하고 싶은 말도 속으로 삼키는 민사린의 답답한 행동은 현재 며느리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드라마는 끝까지 전개된다. 보는 내내 화가 치밀어 오르고, 또 이런 현실에 가슴이 쓰리긴 하지만 결국 민사린으로 인해 조금씩 주변이 변화한다. 그동안 자신들이 너무 며느리로서 민사린의 배려와 행동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음을, 자신들이 너무 무책임할 정도로 무관심했음을 깨닫게 된다. 민사린이 그토록 원했던 민사 링의 밀라노 가구 박람회를 가지 못하면서 드라마는 마무리된 것이 조금 안타깝다. 그래도 민사린이 누군가의 기대와 기준에 갇히지 않고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키는 삶에 응원을 보낸다. 눈곱만큼 조그마한 변화일지라도 이 작은 변화가 모이면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이제는 우리가 민사린 뒤에서 박수를 보낼 것이 아니라 민사린과 함께 가야 될 때다.


명절 때만 되면 수많은 며느리들이 힘들어하고 고부갈등에 지친다.

더 이상 많은 민사린들이 당연한 존재로 취급받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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