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로 승부하는 <개승자>

by 미래

유재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개승자>는 개그를 사랑하는, 개그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간절한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를 담았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변하면서 웃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 덕분인지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누리던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점차 힘을 잃었다. 행복해지고 싶은 열망, 웃고 싶은 마음들은 더 커졌는데, 웃음을 소비하는 방식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전형적이고 짜인 형태로 진행되는 코미디들은 날 것을 선호하는 리얼리티 웃음에 자리를 빼꼈고, 더 자극적인 웃음일수록 사람들이 모였고 힘을 얻었다. 무엇이든 영원할 순 없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환경 탓에 웃음을 잃은 건 개그를 사랑하는, 간절히도 무대가 그리운,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들이었다.


KBS 간판 예능이자 최장수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개그콘서트'가 폐지되고 <개그로 승부하는 자들_개승자>가 공개 코미디의 서막을 알렸다. 대표 코미디언들이 함께 한 이 프로그램으로 다시 코미디의 부활을 꿈꿀 수 있을지 기대된 프로그램이었다.


<개승자>는 대한민국 대표 희극인 12명과 KBS 공채 신인 개그맨들이 각자 팀을 꾸려 개그 무대를 선보이고, 이를 개그 판정단 99명이 판정하는 서바이벌 형식의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전체적으로 개그콘서트의 형식을 이어가면서 서바이벌 형식을 추가 긴장감을 더한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나 역시 기대를 갖고 시청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아쉬움이 많이 남는 프로그램이다.


가장 아쉬운 건 서바이벌 포맷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건 판정에 대한 이유와 판정 기준이어야 한다. 개그 서바이벌에서 판정 기준은 '얼마나 웃겼는가' '얼마나 재밌었는가'이다. <개승자>에서는 판정단이 재밌다고 투표한 개그 무대에 대한 생각을 한 두 번을 제외하고는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개그와 웃음을 전문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판정 근거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노래와 춤처럼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그저 관객들이 얼마나 웃었는지에 따라 달렸다. 하지만 판정단의 호응과 웃음과는 별개로 생각보다 점수 안 나온 적도 있었고,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개그맨들도 생각보다 냉정한 판정에 놀란 적도 많이 있었다. 현장에서 보지 않고 편집된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좀 더 납득할 수 있는 판정 인터뷰 내용들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공개 코미디 특성상 현장에서 직접 무대를 보고 판정한 사람들과 편집된 영상으로 TV로 시청하는 것과는 차이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현장 투표뿐 아니라 온라인 투표로 공개 코미디를 넘어 좀 더 대중적인 웃음을 평가하는 방식이 더해졌다면 서바이벌의 긴장감과 함께 코미디의 부활을 기대했을 것 같다.


<개승자>를 보면서 사람을 웃게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웃음은 말과 몸으로 웃기는 것을 넘어서는 일상성과 대중적인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일이었다. <개승자> 속 코너를 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압수수색' '회의 줌 하자' '신기한 알고리즘의 세계' '힙쟁이' 4개의 코너다. '압수수색'의 경우 김원효를 팀장으로 독보적인 캐릭터와 반전을 주는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였기에 인상 깊었다. '회의 줌 하자'는 코로나 시국에 맞춰 화상 회의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공감대를 건드렸고, '신기한 알고리즘의 세계' 역시 유튜브 알고리즘과 콘셉트로 관련 있는 소재들을 빠른 호흡으로 보여줬다. '힙쟁이'도 젊은 세대들의 '힙한 감성'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풀어내며 재미를 끌 수 있었다.


이 4개의 재밌었던 코너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회적 트렌드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뚱뚱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개그, 맥락 없이 몸으로 웃기는 개그, 다른 사람을 비하하며 웃기는 개그들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웃기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할 뿐이다.


매주 방송하는 개그콘서트였다면 같은 코너에 내용만 바꾸는 방식이 매주 새로운 재미를 주면서도 인상 깊은 코너를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바이벌 형식에서는 같은 코너가 반복되며 내용만 바뀌는 형태가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서바이벌에서 과연 효과적이었을까 싶다.


비슷한 코너가 매 라운드 진행되다 보니, 어느 정도 예상되는 웃음 포인트가 있어서 처음 보는 것처럼 웃을 수 없었다. 위 4개의 코너들처럼 확실한 웃음과 콘셉트를 증명한 개그 코너들은 유의미하다. 하지만 그것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전체 큰 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지만 지나치고 자극적인 경쟁이 없어서 보기 좋았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언제나 자극적이고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더 심하게 경쟁을 몰아붙일수록 극적 긴장감과 희열보다는 반감이 먼저 들었다. '스우파' 역시 재밌게 본 프로그램 중 하나지만, 과하고 자극적인 멘트들을 앞 뒤로 여러 번 붙이면서 캐릭터를 만들고 상황을 전개시킨다. 확실한 캐릭터를 만드는 게 어느 면에서는 좋을 수 있으나 별 일 아는 상황에도 '우리보다 못 한 거 같은데' '우리가 제일 잘해' 식의 멘트들, 화난 얼굴과 눈 클로즈업은 자신감 넘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과한 경쟁의식과 열기가 보는 내내 지칠 게 할 때도 있었다. 모든 것의 단점은 장점에서 연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승자>에서는 경쟁보다는 응원이 더 많다. 같은 개그맨으로서의 고충과 개그 무대가 사라지고 난 뒤의 쓸쓸함을 잘 알아서인지 라이벌 관계 속에서 긴장하고 의식하면서도 잘한 부분은 인정해주며 서로를 응원해준다. 그런 모습들이 경쟁과 서바이벌을 떠나 그들이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웃기기 위해 얼마나 울며 애썼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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