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러울 때 일을 그만둔다. 특별히 힘들다거나 별다른 생각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서가 아니다. 굳이 내가 필요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서다. 일의 가치와 의미를 찾지 못했을 때 난 일이 서럽다.
굳이 돈 벌려고 하는 일에 돈 말고 다른 가치나 의미가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었으면 좋겠다. 그 일이 밤을 새우고, 길바닥에서 도시락을 먹는 일라도 말이다. (사실 대학시절 영화를 찍으러 다닐 때 밤을 새우는 일은 예삿일이었으며, 현장에서 쪼그려 앉아 도시락을 먹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럴 때조차 한 번도 이런 일이 싫다거나 서럽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그때 난.)
내가 하는 일에 스스로 의미를 찾고 자부심을 갖는다면 , 내가 일을 함으로써 돈을 버는 행복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일의 경중을 나누거나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게 아니다. 무슨 일이든 어떠한 일을 하든 자신 만의 의미나 가치가 있으면 된다는 거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언젠가 떠날 일이라 생각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자리'가 아니라고 여겼으니까. 일에 대한 애정도 깊은 관심도 없었다.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처럼 몸도 마음도 가볍게 유지했다. 물론 그렇다고 일을 대충 했다는 말은 아니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한 일이었다.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안 서러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 그렇게 서러워도 쉽게 놓지 못하는 거고, 힘들어도 참고 가족 생각해서 버티는 걸 거다.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의지할 곳 잠시 마음을 놓을 곳이 없어 서러워진다면, 미련 없이 일을 놓는다. 그 서러움이 나를 옥죄어 온다는 것을 알기에. 그 서러움 때문에 출근이 즐겁지 않고, 일하는 시간이 지겹다면 감옥과 다를 게 없을 테니까.
일 할 때의 서러움, 힘든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을 때 온다. 일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을 몸소 느낀다. 그 힘듦을 공유할 사람, 온전히 나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좀 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버티는 일이라면 그리 오래가지 못했을 게 뻔하다. 결국 난 내가 원하는 '나의 자리'를 찾아서 갔을 테니까 말이다.
계약 종료로 끝난 아르바이트였지만, 그 기간을 버티는 게 쉽지 않았다. 계약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나간 몇몇 이들도 있었어서 말 못 하고 다들 참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웃으며 일을 끝낸 스스로가 대견하다.(성장했네 나 자신.)
나는 내가 하는 일로써 다른 사람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스며드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삶과 일상에 함께하고 이야깃거리가 되고, 금방 소멸되는 가십거리라도 입에서 입을 전해지고,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면 좋겠다.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의미이자 일의 가치다. 계속해서 무언갈 생산해내는 일.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이 좋다. 그게 내가 찾는 ‘스스로 서러워지지 않을 일’인 것 같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을 하고 싶다. 빠른 디지털 변화 환경 속에서 콘텐츠는 우리 주변에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지하철에서 짧게 즐길 수 있는 것도 좋고, 환상이자 작은 쉴 곳이 되어 주는 TV도 좋다. 누구에게든 허전한 일상을 채워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여러 사람들이 재밌는 콘텐츠를 보며 같이 웃고 마음을 나누는 게 내가 꿈꾸는 일이다.
내가 만드는 유튜브 콘텐츠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으면 좋겠다. 여전히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게 많지만 조금이나마 휴식처가 되길 바란다. 작지만 소중한 구독자분들이 있다. 그래도 내가 만드는 콘텐츠를 기다릴 구독자분들을 위해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그들이 영상을 보고 정보를 얻어가거나 미소가 지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거 같다.
그래도 1년간 많이 성장했다. (아직 배는 고프지만 말이다.) 매주 마감에 쫓기고 학업과 병행하며 밤새 편집하는 일이 고되지만,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일은 꽤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