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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Jul 27. 2022

오래된 관계가 불편할 때도 있다.

함께한 시간만큼 단단해졌지만, 그만큼 무뎌지기도 했다. 10년 이상 오래 만난 친구들은 가족, 애인, 친구 등 사소한 이야기들을 많이 공유한다. 그 덕에 민낯이어도 편한 옷차림에도 부끄럼이 없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오래 만난 친구들에게서 오는 편안함도 있지만, 오래되었기에 못난 과거들을 매번 되새김해야 부담감도 있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혹은 오랜만에 만난 사이일수록 과거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그때의 우리 추억이 많이 담긴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없었다면 우리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이 소중한 건 변함없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잠깐의 즐거움보다 뒤에 밀려오는 공허함이 더 크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내가 생각하는 나의 과거는 마냥 행복하지 않았고, 만날 때마다 늘 비슷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에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오히려 더 부담이 없다. 나를 잘 모르기에 지금 내가 보여주는 모습들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날만 남아,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기 쉽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전과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 더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가 과거에만 머물다 보면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이 든다. 마냥 행복하지 않았던 과거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 기억해야 하고, 실은 기쁘지 않았던 날들도 웃고 즐거워해야 한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모든 걸 포장해야 한다. 만남 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외롭고 쓸쓸하다. 억지로 예쁘게 포장했던 것들이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할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오래된 친구 관계일수록 과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 우리의 공감대가 과거 이야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비슷한 수업을 듣고 비슷한 일상을 보내며 비슷한 삶을 살기에 작은 이야기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꽤 오래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산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회사를 다니고 일을 한다 하더라도 너무나 다른 일이기에 감히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이야기, 같은 경험을 했고, 같은 감정을 공유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오래 만난 친구들이 싫은 건 아니다. 다시는 그들을 보지 않을 것도 아니다. 그 친구들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도, 그렇게 오래 동안 갈등 없이 관계를 이어온 적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할 때, 얼마나 오래 만나왔는지 그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가 그 화살표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오래 만난 연인이어도 그 미래가 그려지지 않으면, 더 이상이 관계를 이어나가지 않는 것처럼 관계의 깊이만큼 관계의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엔 사람들과 길고 오래 끝까지 변함없이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왠지 그것이 꼭 내가 관계를 잘 유지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이 되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질수록, 반드시 오랜 추억을 공유하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사람들만이 나를 더 채워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통은 바다는 무언가를 비워내려고 가고, 산은 무언가를 채우려고 간다고 한다. 눈앞에 보이는 드넓은 바다는 바다와 파도 외에는 특별히 눈에 볼 게 없어 내 마음을 모두 받아줄 것만 같아서 무언가를 버리기 쉽다. 반면 산에는 풀과 꽃나무, 종종 산에 사는 동물들, 새, 바위 등 눈에 볼 것들이 많다. 그래서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며 채워낼 것들이 많다.


내 오래된 친구들은 바다와 같다. 아무에게도 말 못 했던 부끄러운 것들도 쉽게 털어놓게 된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점들을 발견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고, 내가 몰랐던 부분들을 깨달아 가며 나를 성장시키고 채워가는 산과 같다.


산과 바다, 자연 속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끔은 산이 있고 가끔은 바다가 좋은 거지. 내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가고 싶은 곳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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