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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Aug 31. 2022

웃으며 떠나는 것도

가끔은 정이 드는 게 무섭다. 하지만 정이 드는 것보다 정을 떼어내는 게 더 무섭다. 언젠가는 정을 떼어야 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이 얼마나 아픈지 알기 때문이다. 정이 드는 건 순식간이어도 정을 떼어내는 일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언제 들었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었던 만큼, 그 흔적을 지워내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다. 그리고 그 헤어짐까지 본인이 감당해야 할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늘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소나기엔 당황할 수밖에 없으니까.


정을 떼어내야 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살다 보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되는 것만큼 그 모든 인연들과 정을 떼는 일을 감당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물론 정을 떼지 않고 그들과 오래 인연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와는 정이 들고, 또 다른 누군가와는 정을 떼야한다.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니까.


정말 오랫동안 존경했고 소중했던 학창 시절 선생님들, 삶의 활력을 가져다주는 인생 선배들, 짧지만 강렬했던 수많은 인연들. 우리가 만났던 그 정해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쉽게도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 가끔은 안부를 묻고, SNS로 서로의 일상을 확인하지만, 이미 자연스레 멀어진 시간들을 다시 채우기는 어렵다. '또 보겠지, 언젠가 보겠지'하지만 서로의 일상을 깨고 같은 시간을 나누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는 지역, 만날 시간과 장소를 모두 이겨낼 만큼 보고 싶은 마음이 클 때, 그것이 같은 방향을 향할 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벽이 생긴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언젠가는 헤어질 사람, 자연스레 멀어질 수도 있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은 정을 떼야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덜 아프게 마음을 놓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마음을 꼭 돌려받으려는 것도 아닌데, 헤어짐이 무서워 마음도 온전히 주지 못하는 겁쟁이 어른이 되어간다. 


그래도 이제는 울며 사람을 보내고 정을 떼어내는 것보다 담담하고 의연하게 웃으며 떠나는 법을 배운다. 결국 그것이 상대에 대한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서로를 위하는 일임을 알게 된 후로는 말이다. 내가 싫어서 떠났던 게 아니라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고, 몸은 멀어졌어도 나에게 소중한 추억 한 페이지를 남겨준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그때 우리가 우연히 그렇게 만나지 않았더라면, 각자의 인생에서 서로 같이 있었던 추억 한 조각을 채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가끔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 또한 작고 소중해 여운이 깊다. 웃으면서 보내주었고, 웃으면서 떠났기 때문에 이별의 슬픔과 헤어짐의 아픔에 쉽게 휘청이지 않는다. 언젠가 만나게 될 날을 기리며, 다시 돌아오라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그렇게 각자의 길로 떠났다.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면서. 아름답고도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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