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나가면 모든 것이 처음부터다. 어디서 얼마나 배웠든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회사 원하는 방식이 있고, 회사에게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체계 속에서 '내가 이렇게 부족했던가?'를 수 없이 되뇌게 된다.
일주일 출근하며 콘텐츠를 기획한다는 건 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고, 원석을 찾아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일과 같다는 걸 느꼈다. 수많은 채널에 열 손가락을 다 접어도 셀 수 없을 만큼 콘텐츠를 쏟아져 나오기 위해 새로운 아이템들이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 중임을 알게 됐다. 하루에도 읽어야 할 대본들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수많은 피드백과 퇴고 과정을 거쳐야 겨우 1고를 완성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 콘텐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오고 사랑을 받을지 모르기에 한 번의 피드백 과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나만 좋자고 만드는 콘텐츠가 아니고, 수 억의 돈이 오가는 사업의 일종이기에 때로는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세상에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에 현명한 판단과 대안이 필요하다.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수준의 나는 피드백 페이퍼를 쓰고 공유하고 회의할 때마다 부족함을 깨닫는다. 나의 판단과 기준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생각하지 못한 통찰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때 작아진다. 가끔은 칭찬이 오갈 때도 있지만, 칭찬보다 채워 넣어야 할 부족함이 더 크게 와닿는다.
콘텐츠가 세상에 나올 때까지 모든 책임도 기획자의 몫이 된다. 몇 년을 기획하고 개발해도 실제로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한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이 없다.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함께 해왔고 콘텐츠의 방향성과 대안을 제시했던 기획자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본을 분석하고 회의하고,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 일이 결코 쉽고 가벼울 수 없는 이유다. 지하철을 타고 오갈 때나 일상의 휴식처가 되는 콘텐츠를 쉽게 보고 즐길 때는 몰랐던 일이다.
하얀 도화지에 새로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만큼이나 이미 그려놓은 그림에서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파악하고 판단할 줄 아는 힘이 기획자에게는 필요하다. 여전히 부족하고 알아가야 할 게 많지만,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수준의 나도 머지않아 걷고 뛰어다닐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본다. 걸음마를 떼고 방법을 익히고 노하우를 알게 알게 되면, 병아리 시절의 나를 추억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수 만 번 넘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