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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Jun 06. 2022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핸드폰 카톡은 언제나 공지와 안내들 뿐이었다. 끝도 없이 스크롤을 내릴 때까지 수십 개의 단톡방이 있지만, 일상을 나눌 수 있는 단톡방은 손에 꼽았다. 하지만 그 마저도 알람이 자주 울리는 곳은 아니다.


지난 10여 년 간 학창 시절을 보내오면서 가족만큼이나 아니,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친구들이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느덧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보니, '친구'의 존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었고 학교 안은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학교 밖 세상은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어도 직접 부딪히는 재미가 있었고, 경험의 모든 것들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힘들어도 살아갈 힘이었다.


사회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온 환경, 지역, 경험해온 것들이 모두 달랐다.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 온 사람들끼리도 접점을 찾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끔은 가족, 친구, 사돈의 8촌까지 학연과 지연 등 엮을 수 있는 것이면 모든 엮어 나와 다른 사람을 연결 지을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만의 우주에서 살아온 우리들은 생각보다 서로에 대해 잘 몰랐고 단순한 관계 그 이상의 깊이를 가지는 건 어려웠다.


특히 살아온 지역으로 그들의 배경과 재력을 가늠하고, 졸업한 학교로 그들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하며, 늘 서열을 매기고 계급을 나누는 것에 익숙해진 환경에서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게 했다. 이미 그런 사회에 적응해버린 탓에, 나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들을 오픈할 때면 겁부터 났다. 이런 배경들이 나를 평가하는 모든 요소로 작용할까 봐. 괜한 자격지심이 앞섰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비교우위에 있지 못한 나는 자꾸만 작아졌다. 그리고선 '더 열심히 할 걸'하고 자책도 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내가 늘 생각했던 배경과 환경들이 친구로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마음이 통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때론 인생에서 크게 느껴지는 것들이 그 사람의 전부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마음이 통했다는 사실이다.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밥을 같이 먹게 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같이 있을 때 더 웃게 되는 사람들. 고민을 툭 털어놓을 수 있고, 못난 민낯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고 힘들 때 옆에 있어 줄 것 같은 사람들. 친구란 건 그냥 그런 거 아닐까.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경쟁을 하고, 가끔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와의 승부를 하는 인생에서 마음 하나 편히 둘 곳이 없다면 삶의 재미가 있을까. 작은 이야기로도 크게 공감을 하고, 같은 관심사를 나누며 마음의 깊이를 넓혀갈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이 삶을 버텨내야 한다는 단단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말랑말랑한 감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친구를 만날 때의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일할 때의 내 모습이 다르다. 친구 앞에서 부끄럽고 민망한 것들도 서슴없이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변해가는 모습이 싫지 않다. 어쩌면 그게 내 진짜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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