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흥미로운 특징들
1. 각 단편의 주인공들이 탐구하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학도 출신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고, 깊은 문제를 탐구하려다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작가 본인이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탐구하고 천착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이해해보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 작가의 말 中
하지만 그런 캐릭터들은 대부분 순수한 탐구심 이외의 다른 욕망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연달아 비슷한 탐구자가 등장하면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문제는 확실히 SF라는 장르성을 의식한 작품들에서 생기는 것 같다. 거대한 과학적 논제를 제시하고 다루려다 보면 인물에 대한 묘사가 깊어지기 힘들어진다. 「공생 가설」 같은 경우는 탐구자들 개개인이 구분되지도 않는다. 반면 「관내분실」은 그 둘 사이의 균형을 가장 잘 잡은 작품이었다.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작이라는 결과가 수긍되는 지점이다.
탐구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 구조는 미스터리가 된다. 먼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의 진실을 탐구하는 식이다. 과학적 아이디어를 풀어내는 데는 이런 구조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과학 이야기를 설명하면 독자 입장에선 부담이 된다.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이야기에 적당히 빠져들었을 때 비로소 과학적 이론들이 쉽게 풀어서 설명되고 있다. 친절한 방식이다.
2. 거의 모든 작품들이 전승, 계승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후대에게 기억을 전달하고, 선대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앞서 탐구하는 주인공이 선대의 이야기를 전승 받아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주로 여성들에 의해 이뤄진다.)
나는 이런 특징이 강조될수록 동화처럼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다.(일부 작품을 읽으며 로이스 로우리의 청소년 소설 『기억 전달자』를 떠올리기도 했다) 왜냐하면 계승이라는 거대하고도 진지한 목적에 맞춰 개인의 동기나 개연성이 생략되며 캐릭터가 납작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전승의 기능이 약해지고 캐릭터의 동기나 욕망이 구체적으로 살아난 예외적 사례다. 하지만 좀 더 원형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면 동화적 느낌은 더 심해진다. 첫 번째 수록작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인어공주나 〈베를린 천사의 시〉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기껏 천국에 살다가 고통과 슬픔이 있는 현실 세계로 오려는 주인공이 나온다.
3. 의외로 과학기술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발달한 과학기술을 다루고 그것의 경이로움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인 문제는 남는다. 그 문제 앞에서 과학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먼 우주로 갈 수 있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과학도 출신의 작가치고 의외의 태도이긴 하다. (“그게 그 돈으로 사이보그 우주비행사가 된 사람이 할 말이야?”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그래서인지 아주 조심스럽게 그 말을 꺼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의 배치에서부터 그런 점이 느껴진다. 뒷부분에 실린 작품들일 수록 그런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표제작이자 작품집의 제목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그런 작가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구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생략)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4. 남겨진 본질적 문제는 결국 인간에 대한 문제다.
‘인간적인 SF’니, ‘SF라기 보다는 그냥 인간에 대한 이야기’ 같은 상투적인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과학은 무기력하고,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작품집의 SF적 성취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많은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인간관계라는 문제가 남는다.
인간은 우울체과 우울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존재다. 가닿지 못할 걸 알면서 길을 떠나는 존재다. 존재하지만 실종되고 싶어 하는 존재다. 힘든 앞날이 뻔히 보이는데도 사람들 속으로 뛰어드는 존재다. 그리고 작가에 의하면 ‘아름다운 존재’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 「스펙트럼」) 김초엽 작가가 끝내 경이로움을 내보이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과학도 있지만) 인간 자체다.
인간의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어리석은 행동들이 이야기를 미스터리 구조로 만든다. 세상을 미스터리로 만드는 것의 정체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인간 이해의 단초를 발견한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말이다.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 앞으로 소설을 계속 써나가며 그 이해의 단편들을, 맞부딪히는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한다.
- 작가의 말 中
5. 인간과 과학, 두 가지 초점의 균형을 잡으려는 작가의 고민은 1960년대 뉴웨이브 SF 논쟁을 떠오르게 한다.
뉴웨이브 SF는 그들을 중심으로, 계속 외우주로 향하던 SF 문학을 내면의 내우주로 확장하는 운동이었다. 인류학자이기도 했던 작가 제임스 건James Edwin Gunn은 “모험가도 발명가도 과학자도 아닌,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말로 이 운동을 표현했다. J. G. 밸러드는 “SF는 우주에서 지구로 내려와야 한다. 당장 우리가 만날 미래는 지구에 있다”라고 말했다. - 김보영 외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김초엽의 작품집에 따라붙던 ‘인간적인 SF’라는 평가가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다.
전통적인 SF 작가들은 이 물결에 살짝 당황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학 소설에서 과학을 배제하면 대체 무엇이 남는가?”하며 걱정했지만 성과 자체는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SF의 영역은 크게 넓어졌다. 르 귄은 “작가와 독자의 수, 주제의 폭, 정치적, 문학적 의식 모든 면에서, 모든 방향으로 문이 열리는 듯했다”고 말했다. - 같은 책
어쩌면 김초엽 작가는 전통적인 SF와 뉴웨이브 SF 모두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 작품집에서 작가는 외우주를 오가기도 하지만, 인간끼리의 작은 관계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모두를 한 작품 안에 조화시키려는 것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인물이 쪼그라들어 동화처럼 보이는 실패를 보이다가도, 또 다른 작품에서는 멋지게 성공하기도 한다.
작가가 한국과학문학상이라는 SF로 데뷔했지만, 곧 주류 문단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이런 노력들의 결과로 느껴진다. 아직까지 그 시도들이 치기어릴 수도 있지만, 데뷔 작가라는 걸 감안하면 쉽지 않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많은 독자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으며 SF 붐을 일으켜 놓았다면, 감히 성공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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