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하고도 매력적인 조합
특별한 제한 없이 이야기를 공모한 덕에 묘한 개성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책을 읽을 때 문학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접근한다면 꽤나 재밌는 독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윤살구 작가의 「바다에서 온 사람」과 박선미 작가의 「귀촌 가족」은 상대적으로 장르성이 적다.
「바다에서 온 사람」은 판타지 요소를 현실 속에 녹여낸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할머니'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과 인어라는 판타지 요소가 원래 하나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섞인다. 그런 작가의 뻔뻔함(?)은 사소한 개연성의 문제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만큼 작가의 능숙함이 돋보인다. 서로 극과 극이라고 생각했던 두 세계가 아무렇지도 않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상상의 자유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귀촌 가족」은 일종의 느긋한 복수극이다. 농촌 커뮤니티 안에서 성적으로 유린되는 여성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을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흥미롭게 그려낸다. 여성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는데, 상당한 긴장감이 텍스트 아래 흐르며 분위기를 조성한다. 도시인과 농촌인에 대한 독자의 선입견을 배신하고, 그것을 다시 한번 더 배신하면서 그들 사이의 경계와 벽을 허물고 똑같은 인간의 위치로 데려다 놓는다.
비교적 잔잔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조금씩 단서와 반전을 주며 이끌어가는 절제의 미도 돋보였다. 이 또한 능숙함이 빛나는 부분이라 하겠다. 두 작품 모두 다른 작품들에 비해 분량이 적은데, 적은 분량만으로도 밀도 있는 이야기를 써냈다는 데에서 공력의 차이를 가늠하게 했다.
나머지 세 작품은 좀 더 장르적이면서, 좀 더 젊다. 능숙함은 앞선 두 작품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자극적인 장르성은 더 강력하고, 현 세태를 반영하려는 적극적인 야심이 느껴졌다.
동시대의 문제점을 다루다 보면 분위기가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을 우려한 듯이 세 작품 모두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런 방식이 이해되는 또 다른 이유는, 동시대의 문제를 다룬다면 자연스럽게 해결책에 대한 고민까지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반드시 내놔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원래 소설가의 일이 아니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한 이상 뭔가 결말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사회문제를 소재로 다루는 경우의 단점이랄까, 함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짐짓 발랄한 태도로 유머러스하게 동시대를 풍자하며 해결책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 정도 톤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
「조업밀집구역」의 경우는 그런 태도를 마지막까지 유지한 경우이고, 「토막」과 「알프레드의 고양이」는 뾰족하고 새로운 해결 방식은 아닐지언정 문제점 이상으로 나아가려고 몸부림친 흔적이 보인다. 「조업밀집구역」의 엔딩은 그래서 판타지로의 도피일 수밖에 없다. (현실로 튀어 오르는 잉어를 보면서, 나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엔딩을 떠올렸다.) 작품 속 유머의 동력이 작가의 입담에 기대고 있는데, 이런 식의 유머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과연 책의 오프닝을 여는 가벼운 소극으로서 적당해 보인다.
「토막」은 호러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취업을 포기한 젊은이들을 다루고 있다. 〈시실리2km〉 같은 영화나, 이토 준지의 만화를 떠오르게 하는 상상력이다. 귀신 비슷한 것이 나오지만 그것은 손으로 만져지는 물리적인 면이 강조된다.
희망 없는 청춘들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면이 있어서 마냥 웃으며 볼 수만은 없는 작품이었다. 단순히 취업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방안에 나타난 신체 토막'이라는 것이 가지는 은근한 성적 뉘앙스 때문에 작품의 함의가 더 흥미로워졌다. 남녀의 방에 각각 이성의 신체 토막이 주어진 것이다. 그 토막은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작가는 한 번도 혼자 사는 취준생의 성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들의 억압된 성욕은 기묘한 모양의 괴물로 다시 나타난 건지도 모르겠다.
「알프레드의 고양이」는 조금 지향점이 다르다. 페미니즘적인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굉장히 순진한 '정의'를 내세운다. 그 순진함이 지닌 과격함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가장 급진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영화적인 서스펜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가져온 작품이기도 했고, 주식이라거나 고양이, 히키코모리, 청소년 성범죄같이 가장 동시대적인 문제를 많이 끌어온 이야기기도 했다. 어떻게든 결말을 향해 치닫는 전개가 위태로우면서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각기 다른 경력과 스타일의 작가들이 모인, 꽤나 보기 드문,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조합의 단편집이었다. 아마 여기 실린 작가들이 다시 하나의 단편집 안에 모일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각자의 갈래로 뻗어나가는 것을 상상하고 지켜보는 재미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작가들 모두를 응원하고, 그 개성을 잃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모든 작품의 영상화도 기대 중!)
알량한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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