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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량한 Jan 06. 2022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가장 끔찍한 현실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읽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 활동가들이 애써 직면하고 목격하려고 했던 장면들을 나는 그저 간접적인 글과 몇 장의 사진으로 접할 뿐인데도 그랬다. 그리고 그게 이 책을 읽는 옳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최대한 괴로워야만 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책을 읽기 전으로 도무지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아우슈비츠나 관타나모, 생체실험, 유전자 조작, 인간을 도구화 한 모든 착취와 학살…


역사 속에서 인간을 위협하던 야만 행위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동안 그것들은 인간보다 약한 짐승들에게 산업이란 이름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오히려 그동안 인간이 축적해온 모든 끔찍한 노하우가 거기에 집적되고 있었다. 그것은 야만의 최신판이었다.

돼지가 농장에서 길러져 도축장에서 죽음을 당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묘사된 장면들을 대하고 있자니 마치 그걸 처음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상황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끔찍한 나머지 어떤 은유처럼 보이기도 했다. 위에서 열거한 역사 속 야만을 뛰어넘는 픽션 속 은유 말이다. 영화 〈매트릭스〉 속에서 인간들이 사육되는 광경이라든지,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속에서 여성들이 겪게 되는 끔찍한 참상 같은 것 말이다. 혹은 봉준호의 〈옥자〉에 나왔던 도살장 장면 같은 것.(〈옥자〉는 실제 도살장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음에도 비유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가 단순히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는 장면과 설정들. 하지만 이 책은 문학적인 비유가 아니었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었다.



보통 장르적 비유는 과장되기 마련이다. 더 끔찍하고 더 잔인하게. 하지만 현실 속 축산업을 비유할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로 다른 모든 야만들을 비유할 가장 끔찍한 메타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자꾸 현실감각을 잃고 픽션을 떠올린 것 같다.

그리고 그 픽션적인 감각은 이 집적된 폭력과 착취의 기술들이, 축산업을 통해 보존/발전 돼 온 이 야만이, 인간에게 다시 돌아오고야 말 것이라는 상상을 불러온다. 언제나 인간이 가장 증오하는 존재는 같은 인간이니까. 그리고 돈만 생각하는 인간은 언제든 인간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착취하니까. 이미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책 곳곳에서 활동가들은 자신과 사회의 모습을 가축들의 모습과 겹쳐서 바라본다.



새벽이는 그런 지옥에서 거짓말처럼 구출된 기적적인 '예외'다.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발상만으로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이 있다. 그 작은 기적은 일종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에겐 한 마리쯤의 예외는 있어도 된다. '안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조차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내지 못하니까.

나는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급진적인 동물권 옹호자도 아니다. 이상주의자는 더더욱 아니고 그 흔한 반려동물도 없다. 하지만 이 일련의 일들이 잘못 됐다는 건 알겠다. 마음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뭘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도 채식주의자나 급진적 동물권 옹호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현상태를 바꿀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도살장 앞에서 울부짖는 활동가들의 모습은, 모욕으로 점철된 가축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애곡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예의라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마치 '자신이 죽인 것처럼' 통곡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진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존엄을 지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말을하며 나는 다시 비유를 쓰고 있다. 이 비유도 역시 실패다. 저자 중 한 명이 '명복을 빌지 말고 행동하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알량한 블로그

(http://blog.naver.com/alrya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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