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숲을 다시 거닐다

by Minimum

서른일곱이 된 와타나베를 태운 비행기가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한다. 착륙을 마친 비행기에서 어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비틀즈의 『Norwegian wood』 가 흘러나온다. 그 순간 그는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들을 생각한다. 그토록 사랑했던 나오코의 모습은 희미하지만 그녀와 함께 걸었던 초원의 풍경과 냄새, 바람의 느낌은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당시엔 풍경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고 그녀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와타나베의 마음에는 사람은 없고 풍경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존재하고
이렇게 네 곁에 있었다는 걸
언제까지나 기억해줄래?


나오코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떠나고 나면 그렇게 희미하게 잊혀질 것이라는 것을...

20년 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 를 다른 번역가의 버전인 『노르웨이 숲』으로 다시 읽었다. 다른 번역가의 작품임을 감안하더라도 이전에 읽은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소설을 읽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와타나베처럼 나도 나이가 들어서겠지... 하루키쯤은 읽어두어야 선후배들과 말이 좀 통하던 그 시절, 너도 나도 읽으니 폼 좀 잡느라 읽는 척하며 적나라한 성애 묘사에 침을 꼴깍 삼켰을 뿐, 작품의 깊이를 헤아릴 주제가 못되었을 테다. 급격하게 발전하며 변화하는 사회와 상실(죽음)이라는 개인의 상처로 인해 방황하고 아파하는 청춘들의 모습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전혀 낯설지 않다. 와타나베는 왜 그토록 사랑했던 친구와 연인은 홀연히 저 세상으로 떠나바리고 자신만이 세상에 남아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지만 결코 알아낼 수 없다. 그저 이렇게 되뇌일 뿐…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 속에 이미 갖추어졌고,
그런 사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토록 소중했던 기억은 희미해질 뿐이고 영원할 것 같은 약속은 무참히 깨질 뿐이다. 이쯤되면 삶은 죽음의 반대가 아닌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삶은 죽음이라는 오로지 하나뿐인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열차라는 진실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와타나베는 그 사실을 아프고도 괴롭게 받아들이는 나약하고 가련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죽음과 상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오코를 지켜주고 싶었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생명력 넘치는 미도리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영화 『코코』 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점점 잊혀져가는 고인은 그 형체를 조금씩 잃어간다. 그래서 그들은 나오코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기억해줘(Remember me)'라고 노래 부른다. 그 부탁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자신의 몸처럼 흩어져 희미해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노래한다. 잊는 사람도 잊혀지는 사람도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상실과 고통 가득한 세상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희미해지는 기억을 어쩌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서투른 연습을 하다가 우리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해버리고 말 것이다.


수많은 갈림길에서 우리는 매번 선택을 하고 우왕좌왕 실수도 하고 그러다 값진 성취도 이루고 또 좌절하다 가끔은 행복을 느끼며 그렇게 하루하루 우리는 멈추지 않고 달릴 수 밖에 없다. 어차피 달려야한다면 인생의 가학성에 주저앉아버리느니 우리는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기에 야무지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와타나베의 되뇌임처럼…



우리는 살아 있고,
살아가는 것만을 생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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