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과 함께 나이 든다는 것

by Minimum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밴드의 노래를 사랑했지만, 이십 대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의 특정한 순간들과 연결된 노래들을 부른 밴드는 라디오헤드가 유일한 것 같다. 너바나는 커트 코베인이 자살하는 바람에 일찌감치 탈락했고, 스매싱 펌킨스와 서태지가 유력한 후보였지만 2000년대가 시작되고 내가 삼십 대가 되면서 이상하게도 멀어졌다. 그건 오아시스나 그린데이 같은 밴드도 마찬가지다. 삼십 대에는 시규어 로스를 무척 좋아했지만, 이십 대에는 그런 음악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직 라디오헤드만을 이십 대와 삼십 대를 통틀어, 그리고 지금도 열렬히 지지하면서 들을 수 있다. 어쩌면 그건 내가 성장하는 꼭 그만큼 라디오헤드의 음악도 성장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십 년에 걸쳐서 어떤 밴드의 음악과 내 인생이 나란히 진행한다는 것. 그런 밴드를 가진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 중에서


라디오헤드


X세대 기수 뻘 되는 작가 김연수는 이렇듯 라디오헤드와 함께 성장했다고 말한다. 고등학생때부터 늘 이어폰을 끼고 살던 자칭 음원 중독자인 필자의 경우, 중고등학생 때인 90년대 초까지만해도 팝에 심취하다가 20대인 90년대 중반부터는 취향이 가요로 전향되었던 듯 하다. 특별히 좋아했던 아티스트들을 꼽아보자면 김현철, 토이(유희열), 김동률, 윤상, 이소라, 빛과 소금, 자화상 등이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싱어송라이터라는 점과 90년대 다른 가수들(특히 댄스뮤직 가수들)에 비해 아직까지도 왕성하고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내가 사랑했던 그들과 함께 성장했을까?

어리둥절했던 대학교 신입생 시절, 교내 방송국에서 자주 송출되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과 김현철의 '달의 몰락'을 BGM 삼아 청춘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멋진 척 캠퍼스를 거닐었다. 친구들과 한잔 걸치고 불콰하게 취해서 노래방에 가게 될 때면 나의 18번은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난 행복해’였다. 이별을 하고 나서는 TOY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무한반복 들으며 눈물 한 방울도 흘려 보았고, 슬픔도 잠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되어 첫 데이트를 하던 날 남자 친구는 일기예보의 ‘좋아 좋아’의 오글거리는 후렴부를 하루 종일 흥얼거렸다.

방황과 상처마저도 눈부시던 청춘을 지나 어느새 중년이 되어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울고 웃었던 지난 20년과 앞으로의 20년 이상의 인생은 내가 사랑했던 아티스트들과 음악들로 인해 분명 좀 더 풍부한 향을 갖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들으며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나이 들어간다는 건 그야말로 큰 행운이자 축복이다. 요즘 아이돌 그룹처럼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거나 자주 그들의 음악을 만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짙어지는 와인처럼 그들의 음악은 날로 깊어진다. 반복되는 일상의 쓸쓸함과 우울에 지쳐갈 때쯤 그들은 오래된 친구처럼 예상치 못한 선물을 들고 불쑥 나타난다.


우리의 삶은 그들의 음악을 닮아 어제처럼 멋지고 내일처럼 멋질 것이다. 마음은 늙는 법을 모르고 깊어지는 법밖에 모르기 때문에...


김동률의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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