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아홉 살이 된 나를 보면,
그동안 힘든 일도 많았고
못 해본 일도 많으니
후회하리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아
후회는 없어
이제는 현재를 온전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됐으니까
여든아홉의 노인이 되어서 느끼는 인생의 모습은 과연 어떤 풍경일까요? 여든아홉의 삶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독자가 여든아홉 살의 작가를 만나는 일 또한 흔한 일이 아닙니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 중년되어 버린 억울함(?)에 시달리던 어느 날, 『어떻게 늙을까』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저의 손은 어느새 책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자 다이애너 애실은 영국의 유명한 문학 전문 출판사 안드레도이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서 50년 가까이 일하며 필립 로스, 코맥 맥카시, 노먼 메일러, 잭 캐루악, 시몬 드 보부아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현재를 온전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다니... 우리는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불안해하느라 현재를 의미 있게 살아내고 못하고 있는데 말이죠. 마치 자상한 이웃집 할머니가 군고구마가 달큼하게 익어가는 벽난로 앞에서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그녀는 늙는다는 것, 노년의 삶, 인생의 의미 등을 조곤조곤 따뜻하게, 기어이는 뭉클하게 들려줍니다.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편지도 잘 쓰고 남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해서 출판사 편집자가 되었지만 본인이 직접 글을 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사랑에 실패하고 임신했던 아이를 잃었던 처절한 슬픔의 경험으로 인해 자신을 여자로서 인생에 실패한 사람으로 단정 지어 버린 채 살아갔습니다. 20년이나 지난 어느 날 그때의 일과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정확하게 글로 털어놓게 되자 그 상처가 치유되면서 서서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책이 완성되자 실패자라는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고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글쓰기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후로도 여러 책을 썼습니다.
<옵서버 onserver>지의 단편소설상을 수상했는데 그 덕분에 내가 글을 제대로 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가슴 설레고 도취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하지만 열 번째 단편이 두 페이지를 채우고 흐지부지 돼버린 이후로는 이야기가 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 잠잠하다가 거의 열어보지 않던 서랍에서 뭔가를 찾다 그 두 페이지를 발견해 읽게 되었다. 다음날 이 두 페이지로 어쨌거나 뭘 좀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타자기에 종이를 끼웠는데 이번에는 깜박이며 등장하는 게 아니라 쉭하고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나의 첫 책인 『편지를 대신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는 나의 무의식 속에 쌓여 있던 것을 암시하는 힌트에 불과했는데, 그때까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무의식 속에 쌓여 있었던 이유는 치유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책으로 할 수 있는 한 거의 정확하게 그때의 일을 털어놓게 되자 치유가 된 것이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도 놀라웠는데, 처음에는 사무실에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쓸 수 있기만을 온종일 갈망했음에도 다음 단락을 어떻게 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건 정말 사실이다). 나는 전날 써둔 두세 페이지를 재빨리 읽고 바로 써나갔다. 이렇게 아무 체계 없이 글을 썼는데도 완성된 책은 신중하게 구성한 작품처럼 보였다. (당시 그런 유의 작업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상당 부분 진행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그렇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놀라웠다. 책이 일단 완성되자 실패자라는 느낌이 영원히 사라졌고, 내 평생 어느 때보다 행복했으니까. 또 글쓰기야말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고 더 많이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렇게 글쓰기에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상처가 크고 깊을수록 우리는 그것을 없었던 일처럼 덮어버리거나 잊으려 애씁니다. 그럴수록 영혼의 깊은 곳에는 낫지 않은 염증이 점점 번져만 갑니다. 어떤 아픈 기억이 있었는지 그 기억이 왜 그렇게 아팠는지 다이애너 애실처럼 할 수 있는 한 거의 정확하게 그때의 일을 털어놓기는 결코 쉽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일지라도 타인이기에 나의 깊은 마음속을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일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주었는지, 그 일로 인하여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모든 것을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입니다.
글쓰기는 고독하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낯선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어딘가 조금씩 달라지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기에 보다 많은 분들이 글을 쓰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나의 상처를 헤집어 들여다보고 나면 타인도 세상도 달리 보입니다. 저 사람의 감정은 어떨까, 저 사건으로 인해 세상에는 어떤 영향과 변화가 있을까 생각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처음부터 멋지고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은 낼 필요도 없고 내서도 안됩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받는 것 또한 나중에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습니다. 나라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나만을 위한 글쓰기를 무작정 시작해 보세요. 조금은 덜 매끄럽고 비문도 섞일 테죠. 그러면 좀 어때요? 독자도 나뿐인데... ^^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한 나 자신에게 진심이 담긴 글 한 편을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