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과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다면

『관계』, The school of life

by Minimum


오직 당신에게만 실망할 것을 약속합니다. 거듭된 불륜과 바람둥이 같은 생활을 통해 제 회한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기보다는 오로지 당신에게만 쏟아부을 것을 약속합니다. 불행해지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본 끝에 마침내 제 자신을 바치기로 선택한 대상이 바로 당신입니다.

공허한 약속 대신 씁쓸한 현실에 대한 담담한 수용. 오늘날의 혼인 서약문이 담아야 할 진짜 내용은 이런 것이어야 할런지도 모른다.


드라마, 영화, 소설 속의 가슴 저릿하고 낭만적인 러브스토리는 'Happy ever after...' 이후의 이야기를 좀처럼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은 남녀 주인공이 그 이후 한 공간에 살게 되면서 겪을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시시한 이야기들을 독자나 관객들에게 보여주기를 망설인다. 빨래를 며칠에 한번 어떻게 분류하여 돌릴 것인지, 식사는 어떻게 돌아가며 준비할 것인지, 생활비는 각자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자녀는 몇 명이나 언제쯤 낳을 것인지... 이런 이야기들이 화두에 오르게 되면 아름다운 사랑의 낭만은 점점 사라지는 것만 같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는 남녀가 만나 평생을 함께 하는 긴 호흡의 이야기가 아닌 사랑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약간은 시시하고 짜증이 나고 미간이 찌푸려지는 이야기들 뿐이다. 예술작품은 작품이고 우리네는 오늘의 현실을 살아내야 하기에 오랫동안 한 사람과 바람직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The school of life 의 책 『관계 』에서는 그러기 위해 낭만주의적 사랑보다 고전주의적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랑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답이 있다.




낭만주의적 사랑

내면과 외면이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야 하며, 첫눈에 서로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껴야 한다.

부부관계를 시작할 때만이 아니라 영원히 대단히 만족스러운 섹스를 해야 한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끌리면 안 된다.

직감적으로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사랑에 관한 한 교육이 필요 없다.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뇌수술을 하려면 교육이 필요하겠지만 사랑을 하는 데는 교육이 필요 없다. 느끼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배우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어떤 비밀도 없어야 하며 늘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일 때문에 방해를 받으면 안 된다.)

성적, 정서적으로 긴장감을 잃지 않고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


고전주의적 사랑

사랑과 섹스는 늘 한 세트가 아니어도 정상이다.

초기에 대놓고 진지하게 돈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사랑에 대해 배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약점이 있는 사람이고, 배우자도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인내와 관용이 더욱 커진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엄청난 이익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그들도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어떤 특이한 결함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작용하는 방식이 그렇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인위적인 노력을 수시로 해야 한다. 직감으로는 자신이 가야 할 정확한 방향을 알 수가 없다.

욕실 수건을 걸어놓아야 하는지, 아니면 바닥에 깔아도 되는지를 놓고 언쟁하느라 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시시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빨래와 시간 약속에도 특별한 품격이 있다.




우리가 한 명의 배우자 또는 연인과 오랫동안 바람직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 이 책은 왜 우리가 고전주의적 사랑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지 슬슬 감이 오기 시작할 것이다. 낭만이 사라지고 차가운 현실이 우리를 덮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머릿 속은 뒤죽박죽 꼬이기 시작한다.


'영화, 음악, 취미 하물며 음식에 대한 취향이 이렇게나 다른데 도대체 어떻게 사랑에 빠졌던 거지?'


'내가 애 보느라 이렇게 쩔쩔 매고 있는데 알아서 청소와 설거지 좀 해주면 팔이 부러지나? 하나하나 꼭 말을 해줘야 하나?'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우유부단할까? 저렇게 답답한 성격을 가진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을까?'


우리 부부도 다르다는 점에서 보자면 서울 아니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운할 정도다. 외모에서부터 성격, 취향, 취미 등 삶의 전반이 거의 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 전에는 신기하고 멋져 보이던 것들이 불편함과 거슬림으로 변했다. 그로 인한 다툼이 있고 나면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밀려오기도 했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함께 해야만 하는 삶을 택했고 적응의 시간이 고되고 아팠다. 하지만 시간은 일상의 이름을 빌려 바쁘게 흘러갔고 사랑스러운 딸이 주는 행복과 육아전쟁은 그 어떤 딴청(?)이 끼어들 미세한 틈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만큼 우리의 생각의 폭과 깊이도 무럭무럭 넓어지고 깊어진 걸까. 언제부턴가 상대방의 단점에 대한 불만과 집착보다는 장점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두 사람의 관계가 낭만에서 고전으로 전환되는 멀고 험한 여정의 끝에 꽂혀 있는 푯말 같았다.

고통의 시간은 우리를 변화시켰다. 털털하다 못해 덜렁거리는 나는 남편의 완벽주의와 꼼꼼함을 배워가고 있었고 남편은 목을 옥죄던 완벽주의라는 넥타이를 조금 풀고 인생의 여유를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도시의 화려하고 정적인 문화만을 좋아했던 나는 자연을 사랑하고 활동적인 남편을 따라 어느새 이 산 저 산으로 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신나는 댄스가요를 좋아했던 남편은 세뇌용으로 내가 틀어놓는 음악 덕분에 가끔 클래식과 재즈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 다름은 싫음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내가 상대방의 단점에 진저리 칠 때 상대방도 나의 단점에 진저리 치고 있다. 혼자만의 삶이 아닌 반려자와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한 이상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도 나도 단점 투성이인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쿨하게 인정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나를 무조건 맞추려 한다거나 상대방을 나에게 맞게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환갑을 코 앞에 두고도 못 해내는 게 없는 친절한 톰 아저씨 아니 톰 할아버지가 온대도 완수해 낼 수 없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관계가 주는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해 보려고, 진솔하게 소통해 보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이면 몇 개의 단어로는 정의할 수 없는, 사랑을 넘어선 놀라운 어떤 ‘관계’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내일 점심엔 콩국수를 먹으러 가야겠다. 뻑뻑하고 밍밍해서 도대체 왜 먹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남편의 소울푸드에 이제 막 맛을 들이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