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갱생 프로젝트

『호밀밭의 파수꾼』, J. D 샐린저

by Minimum

예술작품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고, 각자의 상황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예술작품을 느끼고 해석하면 되는 것이라고 소설가 김영하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했다. 하나의 소설이 독자의 마음에 들어가 수많은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감히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내 방식대로 마구 바꿔서 마음속에 저장해도 될까? 세기의 걸작을 내 마음대로 마구 비틀어 해석해버린 부끄러운 이야기가 여기 있다.


드라마에서 빠지면 서운한 속물 캐릭터의 엄마들을 보면서 난 절대 저런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곤 했었다. 하지만 기성세대라 불릴 나이가 되어서일까 고리타분한 꼰대의 성향이 내 안에서 스멀스멀 태동을 시작했다. 감각은 여전히 트렌디하고 열린 마음을 갖고 있으며 쿨하고 진보적이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딸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더욱더 보수적이고 꽉 막혀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부모라면 누구나 성과지향적이고 보수적이며 엄해질 수밖에 없다고 변명을 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그동안의 나의 행보가 너무도 리버럴했기에 나조차도 변해버린 나의 모습이 낯설 뿐이다. ‘우리 아이는 잔소리보다는 자율을 주는 것이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거야. 불안을 내려놓고 아이를 믿으며 의연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자.’ 늘 다짐하지만 어느새 누가 들어도 귀를 틀어막고 싶을 판에 박힌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끔찍한 내 모습을 발견한다.

어릴 적 어머니는 우리 삼남매를 모두 사립초등학교에 보내실 정도로 치맛자락 꽤나 휘날리셨다. 요즘의 알파맘이라 불리는 엄마들처럼 교육에 지대한 관심과 열의를 갖고 계셨다. 하지만 오빠와 언니가 중고등학생이 되고 사춘기를 겪으며 언쟁과 갈등이 반복되었고 그로 인해 심신이 지치셨는지 아니면 득도(?)의 경지에 이르셨는지 막내인 나에게는 최소한의 사교육을 제외하고는 무한대의 자율을 쥐어주셨다. 얼떨결에 주어진 자유와 방임 아래 제대로 계획을 세워가며 공부한 적도 없었고 시험이 가까워져서야 벼락치기 공부를 했으니 중상 정도의 어중간한 성적만을 유지할 뿐이었다. 오빠나 언니 같았으면 분명 불호령과 회초리가 떨어지고도 남았을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어머니는 내가 신통치 않은 성젹표를 가져와도 별말씀이 없으셨다. 결과도 미래도 내가 끌어안고 나가야 할 나의 삶인데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렇게 금쪽같은 고등학교 시절을 방만의 날들로 흘려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날카로운 날벼락을 맞았다. 그것은 외부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 내 영혼 안에서 일어나고 떨어진 것이었다. 내 인생을 이렇게 흘러가도록 놓아버릴 수는 없다는 절체절명의 비명 같은 것이 귓전에 들려왔다. 고3을 목전에 둔 고2 겨울방학 때였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이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흘려보냈다가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회한이 남을 것 같다는 예감에 밤잠을 설쳤다. 사춘기 소녀가 그렇듯 늘 외모에 관심이 많았고 멋지고 간지(?)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성과 지혜가 없이 속이 텅텅 비어서는 절대 멋지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만큼은 어린 나이에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당연히 그 뒤로 열심히 공부를 했고 결과는 나쁘지 않은 해피엔딩. 인생의 작은 언덕 하나를 넘었을 뿐이었지만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평생 자산이 될 성취감과 자존감을 선사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 모습은 아이의 성적에 얽매여 불안에 떠는 전혀 멋지고 성숙하지 못한 어리석은 학부모의 모습일 뿐이다.
그 시절 어머니의 교육철학과 내 자아의 변화와 성장을 떠올려본다. 운 좋게도 하느님께서 갑작스레 내려주신 날벼락으로 인해 내가 철이 들었던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그때 나를 움직인 것은 나의 성숙이나 철듦이 아닌 어머니의 훈육방식이었다.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나를 믿고 부모가 나에게 이런 큰 자유를 주었는데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막 살아가기에는 양심에 난 털 개수가 좀 모자라서 그랬을까? 18살의 어린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점이 있다면 갑작스레 들이닥친 요즘 아이들 말로 ‘현타’, 현실 자각의 충격을 놓치지 않고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잊을 수 없는 성장기의 교훈을 경험한 사람이 왜 내 아이에게는 그토록 모순적으로 행동하는 걸까? 이 시대가 너무도 치열해서? 타고난 소심함과 불안증 때문에?
아기 때부터 내가 좌절과 우울로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고 어루만져준 존재가 그 누구도 아닌 딸이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특출 난 감각이 있어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주옥같은 말과 따뜻한 스킨십으로 위로해주었다. 기대하지도 않았을 때에도 늘 변함없이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며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줬다. 기대가 기대를 낳다 보니 지금의 세속적이고 뻔한 엄마의 모습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28살이나 어린 내 자식이지만 딸아이는 내 인생의 큰 스승이자 은인이다. 그런 소중한 아이에게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나눌 수 있는 인생의 소중한 주제는 뒷전이 미뤄둔 채 학업, 진로 이야기만 귀에 못이 박히게 하고 있다. 욕심도 없고 꼼꼼하지 못하며 감성적인 성향도 모두 나를 닮은 것인데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아이의 그런 성격을 늘 못마땅해하며 끙끙거렸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주인공 홀든이 4과목을 모두 낙제하여 통산 4번째 퇴학을 당한 후 그 사실이 부모님께 통보되기 전 2박 3일 동안 혼자서 도시를 방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한 청소년의 방황을 묘사함으로써 작가는 19세기 미국의 중산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홀든은 학교라는 제도와 기성세대의 세속성과 허위에 환멸을 느낀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급 자동차, 으리으리한 아파트와 엘리베이터, 똑같은 고급 브랜드의 옷 등에 대해 염증을 느낀다. 이렇게 기성세대의 삶으로 발 들이기를 거부한 채 자신의 꿈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거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처음 이 책을 읽었던 20대에는 그다지 내 마음이 들어오지 않았던 홀든의 말이 40대가 되어 다시 읽는 지금은 가슴에 훅하고 꽂힌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내 상황에 끼워 맞추어 해석한 채로 말이다. 홀든이 기성세대에 대한 환멸로 인해 자신과 아이들의 순수성을 지키고 싶어서 파수꾼이 되고 싶어 했다면 나는 (다분히 이기적인 의도로) 딸의 자유의지를 지켜주고 키워주기 위해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 아이가 결정적으로 위험한 순간에만 최소한의 개입을 하는 수동적인 파수꾼이 된다면 뻔하고 듣기 싫은 말을 하지 않으니 나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테니 좋고 딸아이는 타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매사에 스스로를 챙기지 않으면 추락해버릴테니 스스로 제어하는 법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부모로서 학업이나 진로의 결과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순간순간 간질간질하지만 인내할 줄 알고, 한번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부모와 아이는 함께 성장하리라 믿는다.


지금은 내 어머니가 하셨던 무심한 듯 세심하고 결정적인 그 역할,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분해야 할 때다. 아이와 내가 발 붙이고 사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은 잠시 잊고 건강하고 풍성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고 기도할 것이다. 불안을 도려내고 넓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아이가 호밀밭 아래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붙잡아주는 역할이 전부인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