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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멀어지려는 마음

by 신민철

살다 보면 가끔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사이였는데도 멀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멀어질 때가 있어. 사람 사이에 뭔가 어색한 기류가 흐를 때 있잖아. 'ㅋㅋㅋ' 말고는 무슨 답장을 해야 할지 모르겠거나, 한참 답장을 고민하다가 가장 무난한 답변을 찾곤 할 때, 다른 화제를 꺼내기도 전에 상대가 관심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이 들 때, 괜히 나 혼자 말 꺼내고 무안해질까봐 말하기 싫을 때. 그런 대화의 분위기를 감지할 때마다, 나는 너보다도 내 마음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끼곤 해. 나는 겉으로는 사람 관심 없는 척하지만, 불편하게도 그런 관계에 예민한 편이거든.


평소에 대화를 잘 나누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정적이 흐를 때면, 내가 너무나 좁은 관계에 깊게 의지했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날씨가 어떻다든가, 밥은 뭘 먹었다든가. 굳이 안 해도 될 얘기를 하고,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질 때마다, 사람 사이의 맺고 끊음이 우스울 정도로 단순한 듯해. 어느 순간 뚝 끊어져도 다들 잘 살아갈 것만 같거든. 원래 그런 사이였다는 듯이. 서로에게 서로가 귀찮아질 거라고, 각자 살아가면서 저절로 멀어질 거라고, 질려서 그만하고 싶어질 거라고. 그런 식으로 우리 사이에 겹겹의 가시넝쿨을 두르고, 너도 나도 함께 상처 입히는 거야. 어차피 매일 연락할 의무감을 가질 사이도 아닌데, 괜히 특별한 사이인 것처럼 의미 부여까지 해가면서 마음 아프긴 싫으니까.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이 없이도 난 잘 살아왔는데, 왜.


나는 꽤 자주, 내 마음 안에 사소한 손해도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 어떤 때는 내가 받은 애정과 관심을 오차 없이 측정해서 딱 그만큼만, 아니면 그보다 더 적게 돌려주고 싶거든. 나에 대한 무관심에는 형식적인 대답으로 응수하고 감정 상하게 하는 말에는 괜히 더 날카롭게 반응하면서, 타인의 선의에는 딱 한 발자국이나 두 발자국 정도만 보답하고 싶은 거야. 그런 계산적인 마음이 나를 더 꽁하게 만들고,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멈칫하게 해. 답장을 고민하고 있으면 어두운 차단막이 턱 하고 내려앉는 것 같고, 내가 하려는 말들이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처럼 느껴지는 거야.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이라면 안 하는 게 낫잖아. 나도 너에게 의미가 없고, 너도 나에게 의미가 없고, 그렇게 서로에게 무의미해지면 편해지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이 자꾸만 타인의 진심을 왜곡하고 나를 더 깊게 외롭게 해.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의 문자에도 반가움보다는, 그 의도부터 짐작하고 마무리할 멘트를 생각하곤 하거든. 두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 방식으로, 대화가 더 길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 차가 워보일 지 몰라도, 이건 내 자연스러운 방어기제거든. 은 수심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아는 거, 깊은 관계라 착각하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거, 겉으로 비친 모습만 보고 다 안다고 단정 짓지 않는 거, 세상에 변치 않는 건 없다는 걸 잘 아는 거, 나는 그런 차가운 마음에 보호받는 사람이라는 거.


그러면서도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원하는 이기심이 나를 힘들게 하곤 해.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혼자여서가 아니라 혼자이고 싶지 않아서잖아.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줬으면 하면서도, 자꾸만 멀어지고 숨어버릴 뿐이지. 다른 사람의 진심을 알고 싶으면서도, 그 진심을 알고 상처받을까봐 두려운 거고. 그래서일까, 나는 누군가와 오래 이어가고 싶으면서도, 그게 진짜 오래가다 보면 자꾸만 뒷걸음치게 되고, 서로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점에 괜히 엉뚱한 말로 거리를 벌리고, 누군가가 다정하게 대해주면 끝을 먼저 예감하고, 괜히 선을 긋거나, 내가 먼저 식어버린 척하기도 해.


그게 내가 사람들과 서툴게 맺고, 또 서툴게 끊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서툰 만남을 거치면서 조금은 성숙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조금은 더 손해 보는 거에 무뎌지고, 조금은 더 아파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네가 외로운 건 네 마음속에 따뜻한 마음이 남아있어서라고 생각하거든. 만일 지금도 너만의 외로움에 갇혀있다면, 내가 내미는 미적지근한 이 편지를 받아주길 바라. 네가 사람들의 관계에서 자꾸만 멀어지려는 마음이 이상하거나, 이해받지 못할 감정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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