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이야기가 하소연으로 느껴질 때

by 신민철

요즘 퇴근 후에 드라마 한 편씩을 보곤 해. 나는 TV 잘 안 보는 편이긴 한데, 엄마가 "오늘도 한 편 봐야지"라고 하시거든. 낮에 혼자서 보실 수 있는데도 기다렸다가 아들과 시간 보낼 셈인 거지. 그 의도를 잘 아니까, 어떨 때는 피곤해서 일찍 눕고 싶은데도 거실로 나와있는 거야. 근데 엄마도 하루 종일 말 상대가 없었을 테니까, 정작 드라마는 뒷전이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셔. 근데 어떨 때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말도 많이 하시거든. 네 아빠가 이번 달까지만 일하기로 했다고, 새로 일하기로 한 곳에서 사람을 너무 함부로 대한다고, 이제는 손목도 무릎도 잘 쓰지 못한다고.


"그래, 아빠도 이제는 쉬셔야지. 거기는 왜 그렇게 사람을 힘들게 한대." 그 작은 공감에 엄마는 물꼬가 트인 것처럼 하고픈 말을 털어내곤 해. 오늘 아파트 외벽 도색을 했는데 유리창에 페인트가 묻었다고, 경비실에 전화를 했더니 또 불만이냐는 식으로 응대하더라고. 사실 내게는 별거 아닌 얘기인데, 이미 한 차례 불편한 대화가 오고 가서 같이 욕해주기에는 좀 지치는 거야. 물론 나도 답답하고 화나지. 근데 난 엄마가 가볍게 토스한 말을 능숙하게 쳐낼 재주가 없거든. 그래서 결국 입을 닫게 되고, 한숨만 내쉬게 되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TV 화면에만 시선을 두는 거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나도 내 고민만으로 답답하고 힘들다고. 엄마는 말하고 나서 속이 풀릴지 몰라도 난 아니라고. 나는 내뱉기 힘든 말들을 꾹꾹 삼키다가, 결국은 퉁명스럽게 대답을 할 때가 많아. 그럴 때면 엄마는 갑자기 설거지를 하시곤 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마음도 편할 수는 없잖아? 그저 잠깐 들어주기만 하면 됐던 건데, 그게 뭐라고 그렇게 듣기가 싫었을까. 나는 설거지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도 않는 TV 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조용히 불 꺼진 방 안으로 들어가곤 해.


힘든 얘기는 그저 듣기만 하는 것도 힘들잖아.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쉽지 않은 일이고, 친구 사이에도 피곤한 얘기니까. 그런데 생판 모르는 남의 사정을 들어준다는 게 쉬울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다른 사람을 위로하겠다고 이 글을 쓰는 내가 창피하더라. 사실은 누군가를 위한다는 핑계로 내 고민들만 풀어내고 있을 뿐이잖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은 진심으로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그저 내 걱정거리들만 툭 하고 던져놓고 이해받길 바라는 거지. 정작 주변 사람들의 고민에도 무관심하면서 말이야.


그런 생각에 주 글쓰기를 그만두곤 했어. 너무 내 힘든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에게만 의미 있고, 타인에게는 무의미한 일을 계속하고 싶진 않았거든. 내가 쓴 글을 보고 한 명이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했고, 영감이 되었으면 했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다시 쓸 용기가 되었으면 했어. 그래서 비슷한 이유로 자꾸만 하소연하는 글을 쓸 때면, 지금 쓰는 글들이 너무나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거야. 자주 우울한 글을 쓴다고 해서 사람들한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은 건 아니었거든.


나는 그저 글을 쓰면서 나의 외로움, 세상의 다른 외로움을 더 잘 이해하고 싶었던 거야. 자꾸만 내 글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내가 우울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설득력이 부족했던 거지. 그러니 너도 네가 하는 말들이 너무 하소연처럼 들리고, 때론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더라도 멈추지 마. 우리는 말을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야 하는 거니까. 그 과정에서 나를 더 잘 이해하고, 타인에게 더 귀 기울이고, 삶을 더 사랑하면 되는 거야. 네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들이 지금은 서툴다고 생각될지 몰라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큰 의미가 되어줄 거라고 믿어. 계속 써 내려가.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keyword
이전 09화자꾸만 멀어지려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