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자주 망설이곤 해. 그 끝을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그 과정을 버틸 자신이 없어서 마음을 접는 거지. 그동안 내 인생에서 도전이라고 부를 만한 시도를 거의 해본 적 없어서 자꾸만 무난한 길만 찾으려고 하는 듯해. 이럴 때면 사람의 마음에도 관성이 작용하는 것만 같아. 일단 한 발 내딛지 못하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오늘도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며 내일은 다를 거라고 기대하는 거야. 자꾸만 이불속으로 파고들며 자책하고, 텅 빈 마음에 비겁한 안도감을 느끼며 잠들곤 해. 뒷걸음질만 치다가는 금방 낭떠러지를 맞닥뜨릴 걸 짐작하면서도, 하루의 고난함에 자꾸만 눈을 찔끔 감고 오늘을 흘려보내는 거야.
물속이 얼마나 깊은지 잘 아는 사람일수록 쉽게 뛰어들기가 어려운 법이잖아. 현실의 장애물을 뛰어넘기에는 그 허들이 너무 높다는 걸 우리는 살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잖아. 무난하게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른 사람들처럼 살려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하는지 잘 아니까. 괜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두려운 그 마음을 이해해. 나도 어떤 일을 간절하게 원했다가 실패했던 경험들이 있거든. 왜 내가 간절하게 원했던 일들은 죄다 안 될까 좌절했다가, 그저 간절함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자책했다가, 나중에는 간절하다는 말이 참 슬프고 아름다운 말이라고 자각했던 순간들. 그런 순간을 거칠 때마다 내 마음의 발화점은 점점 더 높아지는 듯해.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을 쓰곤 했어.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점차 마모되어서, 이제는 평범하게 살아가기도 벅찰 때마다 글로 풀어냈거든. 감정 쓰레기통에 아무 말이나 쏟아내고,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마음도 아무렇지 않은 듯 널브러뜨렸지. 오래 참던 숨을 거칠게 내쉬듯이, 뭐라도 써야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썼던 거 같아. 그런 식으로 엉망진창 써 내려간 날들이 쌓였을 뿐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꾸준히 쓰고 있더라고.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말이야. 어쩌면 내게 절실했던 순간들은 지나쳐서 없어져버린 게 아니라, 마음속에 꼭꼭 숨었다가 내게 '잘 살라고' 숨을 불어넣는 게 아닐까.
우리는 살면서 많은 고민을 해. 빈 원고지에 첫 문장을 채워 넣는 습작생처럼 막막해하고, 처음 도로에 나선 운전자처럼 자꾸 멈칫거리는 거야.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건 그만큼 두려운 일이니까. 앞으로 수십만 km는 더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압도되고, 사막을 걷는 순례자처럼 외로울 때도 있겠지. 그런 두려움에 한 발 내딛지 못하는 게 사람이고, 세상에서 내쳐져도 어찌어찌 살아가는 게 사람이야. 네가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들도 모두 이러한 순간들을 잘 통과해 왔을 테니까. 지금 네 마음이 너무 복잡하다면, 그냥 눈을 감고 한 발 내디뎌도 괜찮아. 네가 잘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끝까지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반드시 너만의 빛이 보일 거야. 그 한 줌의 빛을 놓지 않고 끝까지 잘 나아가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