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입안에 작은 혹이 있었다? 아랫니에 혀를 대면, 그 아래로 작은 사탕이 있는 것처럼 잇몸이 볼록하게 나와있는 게 느껴졌거든. 그게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 처음에는 원래 잇몸이 그렇게 생겼나 보나 했으니까. 양치를 하다가 자꾸만 잇몸이 다쳐서 그제야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근데 치과에 가보니까 별 문제없다고 하대? 의사가 나중에 틀니 할 때나 불편할 수 있다면서 웃길래, 나도 따라 웃고 말았어.
그 혹이 뼈를 녹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치아 교정을 하려고 치과에 갔었거든. 그런데 웬걸. X-ray를 찍고 나서야 구멍이 뻥 뚫린 잇몸이 보였던 거야. 실은 삐뚤빼뚤한 치열이 더 충격이었지만... 그때 난 그저 화면이 덜 찍혔다고만 생각했거든. 의사 선생님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나서야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정밀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말에 식은땀이 죽 흐르더라. 어떤 혹인지에 따라 혹만 제거할 수도 있고, 아랫니 4개를 뽑아내야 할 수도 있다는 거야. 정말 재수가 없어서 암이라면 그 이상의 조치가 필요할 테고. 그럴 확률은 1%밖에 안 될 거라고는 했지만, 그 1%라는 말이 사람 미치게 하는 거 있지? 얌전히 제자리에 있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기둥 밑바닥을 파먹고 자라는 해충이었다니. 게다가 무려 1% 확률로 점화될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일 수도 있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참 피 말리더라. 잊고 살다가도 이따금씩 혀가 혹에 닿으니까 금방 또 두려워지고. 아랫니가 네 개나 뽑혀버린 모습을 상상하다가, 그 1%에 걸리려면 얼마나 재수가 없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되는 거야. 그때는 별일 아닐 거라는 말이 위로가 안 되더라. 이상하게도 희망을 품고 있으면 인생은 그 반대로 흘러갈 때가 많잖아? 괜한 기대를 하다가 그게 아니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괜찮을 거란 말이 잘 와닿지가 않는 거야. "이 뽑으면 다시 심으면 되지. 그거 가지고 세상 안 무너진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툭 건네는 엄마 말이 더 깊게 와닿더라고. "요즘 임플란트 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데. 그까짓 거 별것도 아니야." 평소 같았으면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을 법한데, 그날만큼은 그 말이 너무 든든하게 느껴졌어.
결국, 그 혹이 뭐였는지는 수술 당일에 알 수 있었어. 잇몸을 쨌을 때 상태를 봐야 한다고 했거든. 물혹이면 그 부위만 긁어내겠지만, 지방이라면 발치를 할 수도 있다는 거야. 다행히도 결과는 물혹이었어. 물론 혹을 긁어내는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이를 뽑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버틸 힘이 되더라고. 그런데 수술이 잘 끝났다고 모든 게 잘 마무리된 건 아니었어. 수술 이후에도 혹이 재발하면 발치를 해야 했고, 긁어낸 자리에 뼈가 잘 차오르지 않으면 치조골이식을 해야 했거든. 일이 년간 경과를 지켜보면서 마음 졸였던 기억이 나.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네게 제대로 된 위로를 건넬 자신이 없어서야. 나는 네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다 알 수가 없으니까 조심스럽거든. 네가 겪었을 좌절의 순간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숨죽였던 시간들, 세상이 원망스러웠던 날들을 어떻게 가늠하겠어. 내 고민쯤은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아프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잖아. 대부분은 건강히 살아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겠지만, 누군가에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게 가장 큰 바람일 수도 있고. 이런 네게 괜찮을 거라거나, 힘내라거나, 이해한다는 말을 쉽게 하고 쉽진 않았어.
수차례 반복되는 정밀 검사와 끝이 보이지 않는 치료 과정, 병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신체 일부를 잃는 고통 같은 거.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을 섣부르게 말할 순 없었던 거야. 그 일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말이야. 원래 다들 본인이 겪는 일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거고, 또 남들하고 비교한다고 해서 덜 힘들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불행의 크기를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는 거잖아. 나도 그래. 남들한테는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보일 수 있어도, 내 일이 되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더라고. 너의 불행이 네게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너를 이해한다고 말을 할 수가 있겠어. 다만 이렇게 내 얘기를 풀어놓는 것만으로 약간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 대단한 조언도 해줄 수가 없고 완벽한 공감도 해줄 수는 없지만, 이렇게 조용히 내 얘기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괜찮다면, 너도 너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