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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커뮤니티

by 신민철

층간소음 피해자들의 카페에 가입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버티는지 알고 싶었다. 현역들의 조언이 필요할 때였다. 위층을 상대할 비장의 무기가 있진 않을까. 이미 귀가 트여버린 사람이 귀를 닫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이 카페에서는 내게 뭔가 해답을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무엇보다, 나보다 더 미쳐가고 있을 n번째 피해자의 심정이 궁금했다. 그게 나름대로 위로가 될 것 같기도 했고.

카페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데서 놀랐다. 분 단위로 올라오는 수십 개의 글들을 보면, 나도 거대한 투쟁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전국에서 층간소음이 이뤄지면 커뮤니티에 실시간으로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은 제목부터 신랄했다. 나는 스크롤을 내리면서 육두문자가 가득한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매일 밤 불면증을 겪는다는 A, 언젠가는 천벌을 받을 거라고 기원하는 B, 고망(고무망치)으로 보복하고 친구네서 잘 거라는 C. 많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회원은 골전도 스피커를 설치했다고 사진을 올렸다. 거실에 설치된 기둥과 그 밑을 받치고 있는 여러 권의 책더미. 사진만 봐도 그동안 시달렸을지 짐작이 가능했다. 그는 소음이 심할 때마다 10분씩 스피커를 틀었고, 조련의 성과가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어떤 회원은 위층을 아동학대로 신고했다는 게시글을 남겼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어차피 경찰도 우리 편은 아니고, 그냥 위층을 무시하라는 말만 할 뿐이다. 더 큰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막는 게 그들 역할이고, 오히려 우리들에게 보복행위에 대해 주의를 주는 게 현실이다. 아동학대나 부부싸움으로 신고를 넣는 게 오히려 효과가 크다. 경찰이 물으면 소음이 심해서 착각했다고 잡아떼면 된다. 꽤나 실전적인 노하우라서 답글이 스무 개는 넘게 달렸다.

"지들이 당하고도 같은 말이 나올까. 이제는 경찰도 믿을 수가 없다."

"경찰이고 경비실이고 죄다 한통속이다. 결국 보복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러니 아래층이 눈 돌아가서 칼춤 추는 거다."

그중에는 다소 극단적인 댓글들도 많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글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왜 가해자가 보호받고 피해자는 참아야만 하나. 이래선 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할까. 관리소의 분쟁 조정은 지지부진하고, 경찰의 계도 조치는 흐지부지하다. 결국은, 참느냐 참지 못하느냐의 결과만이 남을 뿐이다. 그 결과를 카페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생생한 후기들이 차고 넘치게 많았다. 쇠파이프로 천장을 치다가 벽지가 해졌다는 이야기, 이어플러그를 끼고 생활하다 보니 귓속이 헐 거 같다는 이야기, 엘리베이터에서 위층을 만날 때마다 긴장감이 감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나도 내 사연을 남기고 싶어졌다. 다행히 이곳에는, 내가 누구인지 짐작할 사람은 없었다. 익명성 아래에서는, 그동안 고여있던 말들을 쏟아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게시물에는 첫 번째로 위층에 올라갔을 때부터, 마지막인 세 번째까지 시간순으로 써 내려갔다. 첫 번째 항의 이후 두 번째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점점 더 버티는 게 쉽지 않아서였다. 대신 원만하게 화해할 생각으로 실내화를 구매했다. 바닥이 푹신한지 몇 번이나 눌러가면서 심사숙고한 제품이었다. 아이 것만 사면 너무 노골적이라는 생각에 부부가 신을 것까지 두 켤레를 더 샀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자. 이 실내화가 가져다 줄 평화를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선물을 건넸을 때 위층 여자는 똥 씹은 표정이었다. 말로는 고맙다고 잘 쓰겠다고 했지만 분명히 고마운 사람의 태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잠시 정적 속에서 대치했다. 내가 왜 실내화까지 사서 바치는지 알면서도 어떻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을까. 그 뻔뻔함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다짜고짜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애써 선물을 준비해 놓고 상황을 악화시키고 싶진 않아서였다. 결국 나는 억지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은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세 번째는 다소 감정적이었다.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아랫집 사는 사람은 생각도 안 하냐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따졌다. 적어도 죄송하다는 말 정도는 들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오히려 적반하장이었다. 시끄러우면 이사를 가라느니, 너무 예민한 건 아니냐느니, 애 키우는 집에서 이 정도는 당연하다느니. 세 번째 항의는 결국 고성이 오가는 싸움으로 끝났다. 나는 끝까지 사과 한 마디를 받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럼 이사를 가라”는 말이 쐐기처럼 박혔다. 먼저 이사 와서 살고 있었던 사람은 난데, 누구 보고 이사를 가라는 건지. 내가 겪은 치욕과 분노를 최대한 담담하게 적어 내려갔다. 오히려 담담해야 더 처절해 보일 것 같았다. 마지막은 이제는 반쯤 포기한 상태라는 문장으로 끝을 냈다.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이 올라왔다. 짐승 같은 것들은 좋게 말로 하면 못 알아듣는다. 자기들도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동안 잘 참았다. 낯선 닉네임들인데도, 그 말들이 묘하게 내 편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닉네임을 검색해서 나오는 글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적어도 나만큼은, 아니 그 이상으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글들을 읽다 보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만 미쳐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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