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을 찔러버리면 소음이 멈출까. 칼날이 석고보드를 두부 자르듯이 가르고 어린것의 말랑한 발을 찢는 상상을 한다. 적어도 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깊게 파고든다. 데시벨 높은 비명이 쨍하고 울린다. 아이는 발을 빼려다가 더 깊이 찢기고 바닥은 어느새 피로 흥건해진다. 피가 아래로, 내 방 천장을 타고 흘러내린다. 벽지가 새빨갛게 물든다. 그제야 두 연놈은 비명을 지르며 자식에게 달려간다. 그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붉게 벌어진 어린 살결과 마루를 뚫고 나온 칼날. 불현듯 아래층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야 제 밑에도 사람이 산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듯하다. 세상에는, 비정한 항의라는 게 있다는 것도.
쿵, 쿵, 쿵.
천장은 멀쩡하고 소음은 여전하다. 머릿속에서만 재생되는 복수극은 늘 아찔하면서도 아름답다. 손가락 한 마디쯤은 인내심을 남겨준다는 점에서. 생각을 생각에서 그치게 해 주는 건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이 아니라 무자비한 상상력이었다. 위층이 쿵쾅거릴 때마다 그들에게 해를 입히는 온갖 종류의 상상을 했다. 현관문을 발로 차고, 면전에 욕설을 날리고, 쥐가 담긴 박스를 두고 오는 상상. 위층 것들의 일그러지는 표정을 떠올리며 화를 삭였다. 그러다가도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층간소음이 힘든 점은 소리보다도 울린다는 데 있다. 소리는 다른 소리로 어느 정도 덮을 수 있지만, 머리가 울리는 건 속수무책이다. 나는 코너에 몰린 복싱선수처럼 가드만 올리고 있고, 상대의 잽-잽-라이트훅이 헤드기어에 무자비하게 꽂힌다. 엿 같은 건 자꾸만 다음 펀치에 움찔거리게 된다는 데 있다. 예고도 없이 쿵쾅거리기 시작하다 보니, 작은 소리도 괜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대체 이 지랄 같은 소음은 언제쯤 멈출까. 몇 달간 두통약을 달고 사는 게 일상이 되었다.
'저들은 안 시끄러울까?'
때때로 순수한 호기심마저 들었다. 이 정도면 부모가 먼저 나서서 주의를 줄 만하거늘. 자녀가 소음에 둔감한 편이면 부모도 역치가 낮다는 연구결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내 경험으로는 입증되었다. 백 번 양보해서 마늘 빻는 소리는 이해하더라도, 드릴이 돌아가거나 톱을 가는 소리,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가 일반 가정에서 날 법한 종류는 아니었다. 집이 무슨 공사 현장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걸까. 이쯤 되면 청각에 문제가 없는지 안부를 물어야 할 판국이다. 물론 이웃된 도리로, 양심은 안녕하신지부터 묻는 게 올바른 순서일 테다.
안 따져본 건 아니었다. ‘씨발’을 속으로 다섯 번쯤 삼키고, 씩씩대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뭘 그렇게 두드려대냐, 애들은 언제까지 뛰게 둘 거냐. 일부러 계단 발소리를 크게 내며 할 말을 머릿속으로 준비했다. 이미 몇 개월간 벼르고 있었으니 수십 번 시뮬레이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뱉는 건 쉽지 않았다. “아랫집 사람인데요, 조금만 조용히 해주실 수 있을까요?” 피해자답지 않게 비굴한 태도로 말한 게 문제였을까. “네, 그럴게요.” 한마디 하고는 문을 홱 닫아버렸다.
결과는 현상유지였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더 항의했지만 달리지는 건 없었다. 주의를 준 날도 그때뿐이었고, 다음날이면 다시 쿵쾅거림이 시작됐다. 왜 몇 번이나 말을 해도 다음날이면 머릿속이 리셋되는 걸까.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경비실에도 몇 차례 요청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마지막에 호출했을 땐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끊어버렸다. 경비실 눈에는 위층보다 내가 더 진상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따지기를 그만뒀다. 역시 속 편한 피해자는 없고 속 편한 가해자만 존재했다. 남자의 멱살을 잡든, 여자의 머리채를 잡든, 끝장을 보지 않는 한 해결은 없으리라는 예감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인생의 교훈 — 미친놈들과는 되도록 엮이지 말 것 — 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보복 방법들 — 천장에 스피커를 설치한다거나, 고무망치로 두드린다거나, 환기구로 담배냄새를 흘려보내는 등 — 이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과 같은 인간 부류로 묶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마 위층도 잠은 자야 하기에 새벽에는 조용했다. 드물게 하루나 이틀 정도는 뛰지 않는 날도 있었고, 이제는 '뭐, 원래 이 정도는 그랬다'라고 생각하면 어지간해선 버틸 만했다. 드릴이나 망치 소리도 매번 들리는 건 아니었고, 매일 마늘을 먹어야 하는 곰도 아니라서 마늘을 찧는 건 봐줄 만했다. 물론 위층 것들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했지만. 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아져야 했다. 세상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괴로움도 있지만, 돈 문제가 걸려있으면 어지간해선 참게 된다. 이 근방에서 여기만큼 저렴한 집은 없었고, 더 멀리 가면 출퇴근이 문제였다. 일 년만 버티자. 그게 나의 희망인지, 저들의 승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년이면 적금 하나가 만기였고, 모아둔 돈까지 보태면 지금보다 나은 집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