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구핏, 한국어로는 다소 귀여운 억양이지만 타갈로그어로 채찍질이란 뜻이 있는 만큼규모도 크고 위력도 상당한 태풍이다. 이번 하구핏은 중국 상하이에서 소멸되긴 했지만 한반도에 강한 저기압을 남긴 탓에 연일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됐다. 북북서로 향하던 하구핏이 북으로 진로를 틀은 탓이다.
기상청이 태풍의 진로를 완벽히 예상할 수 없던 것처럼 나와 A는 이번 휴가에 장마가 겹칠 거라고는 짐작치도 못했다. 2주 전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다는 낌새를 느끼긴 했지만, 우리는 이미 정해진 휴가날짜를 각자의 사정으로 조정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매일 날씨를 확인하고 태풍이 최대한 반대편으로 빗겨나가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이번 휴가는 몇 달 전부터 계획했기에 더욱 간절했다. 일 년에 한 번, 주말을 빼고 단 이틀의 휴가라 둘 다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최근코로나로 인해밥 먹고 카페 가는 식의 데이트만 반복했으니오죽했을까.
우리의 계획은 2박 3일로 단양에 가서 패러글라이딩과 ATV를 타고 다음날 고수동굴을 구경 갔다가 물회를 먹는 것까지였다. 패러글라이딩을 하기로 한 건 A의 의견이었는데, 퇴근도 못하고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원고를 보는 게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계획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패러글라이딩은 전 날 업체에 전화하면 됐고 숙소는 시외버스터미널 근처로 이미 예약해뒀기에 딱히 신경 쓸 부분은 없는 듯했다.
하필 날씨가 문제였다. 휴가 전 주까지 비가 내리고 그칠 거란 예측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주 목요일과 금요일은 너무도 화창하고 바람까지 선선했다. 비는 주말부터 내리기 시작했는데, 일기예보를 보니 한 주 내내 비가 온다는 것이다. 숙소도 예약해뒀고 미리 버스표도 끊어뒀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즉시 숙소 예약 취소가 되는지 확인해봤더니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몇몇 숙소는 전 날까지 위약금 없이 취소가 가능했지만, 예약 취소 불가 업체는 위약금을 떠나서 취소 자체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휴가철 바가지요금에다가 기상 악화라는 취소 사유가 있는데 이틀 치 숙소 비용을 날린다는 것은 너무도 억울했다. 취소하기로 결정이 나면 숙소에 연락이라도 해봐야겠다 싶었다.
하구핏이 진로를 북북서로 틀었다. 이에 따라 비도 화요일이나 수요일 즈음 잠시 주춤한다는 예보가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 탓에 A도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이었다. 기분도 덩달아 오락가락했다. 날씨가 좋다고 하면 신났다가 그 반대일 경우 종일 우울해있는 식이다. 며칠 그러다가 우리는 출발은 하되 비가 많이 오면 숙소에서 영화라도 보자는 결론을 냈다. 여건이 되는 대로 즐기고 더는 여행 문제로 속상하지 말자는, 서로 간의 합의였다.
여행 전날 아침 우리는 또 하나의 문제에 부딪혔다.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는 호우피해 탓에 A의 부모님께서 결국 여행에 반대한 것이다. 충분히 이해 가능했고 짐작했던 상황이기에 오히려 덤덤했다. 고민해보고 답장해달란 문자를 남겼을 뿐이다. 나는 아마 A가 여행을 취소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었다. 만약 부모님 반대에도 갈 생각이었다면 굳이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그날 A의 답장이 뜸했다. 일이 바쁜 거야 알겠지만 답장이 뜸하니 내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갈지 말지 얘기를 해줘야 숙소에 연락을 하든 말든 할 테니까. 하지만 고작 몇 푼 환불받겠다고 바쁜 사람 재촉할 순 없는 노릇이다. "생각해봤어?" 나는 퇴근길에 A에게 문자를 남겼고, 곧 A에게서 미안하다며 아직 생각해봐야겠다는 답이 왔다. 그 답장을 확인했을 때 나는 이미 답답함과 서운함이 앙금으로 남은 상태였다. 환불을 떠나서 내가 여행에 대해 고민하는 것만큼 A가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상하게도 A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다시 여행을 가는 분위기였다. 아침에 그런 얘기를 한 것과는 달리 A는 가려는 의지가 확고했고, 부모님도 한풀 누그러지셔서 다시 여행에 동의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A에게서 여행을 취소해야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기대하는 즐거움보다 걱정하는 스트레스가 더 컸으니까.
A로부터 전화가 와서 갑작스레 여행을 취소해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모님께서 중부 지역의 홍수 피해를 듣고 여행에 반대하셨다는 얘기였다. 나는 괜찮다고, 내일 만나서 여행 기분이나 내자고 했지만 A는 그 얘기를 하면서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이 여행을 먼저 제안한 것도, 더 가고 싶어 했던 것도 A였다. 그제야 A도 나만큼은, 적어도 나만큼은 힘들었겠지 싶었다. 당연한 얘기인데도 평소 같았으면 금방 알아차렸을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여자 친구 앞이라고 나름 어른 흉내를 냈지만, 정작 어린애 같은 건 나였다. 나는 그런 내가 한참이나 창피하고 또 미안했다.
나는 나답지 않은 순간을 발견했을 때 한층 나다워진다. 그 모습이 더 초라하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일수록 나는 그 볼품없는 모습이 나라는 걸 금세 깨닫고 만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내 모습을 더 자주 발견하곤 한다. 잃을 것 없는 관계에서는 오히려 초라해지거나 이기적이거나 계산적일 필요 자체가 없기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종종 가장 볼품없는 형태로 망가지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염치없게도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내 초라한 모습까지도 온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그녀에게서 느낀다. 어쩌면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을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