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민철 Mar 01. 2022

친구 K와 A에게

친구 K에게


1.


함께 취업 준비 하던 K가 좋은 소식을 전했다. 면접 봤던 두 회사 모두 합격했다는 얘기에 실은 축하하는 마음보다 허전함이 컸다. 둘 다 조만간 취업해야겠다고 말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라니... 둘 중 어디에 갈지 고민하는 K를 앞에 두고 내심 둘 다 안 갔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했다. 먼저 취업다길래 질투도 났고. K는 전 회사부터 2년 넘게 께 한 터라 이제 각자의 길을 간다는 게 섭섭하고 낯설었다.


K가 두번째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우리는 카페에 있었다. 가장 먼저 축하 수 있다는 특별함에  살짝 들뜬 상태였는데, 뜻밖에 친구 표정이 밝지 않았다.  연락 온 곳에 야할 고민 중이었는데,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니 그 심정도 이해가 됐다. 그래도 합격은 합격. 축하할 일은 축하할 일. '지금은 그만 고민하고 기뻐해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K는 여전히 고민이 가득해보였다. 좋은 소식에도 환한 표정 못 짓는 걸 보면서 나는 조금 조급해졌고, 괜히 심술이 났고, 어떻게든 웃기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어우, 재수없어."


나는 아직 면접 한곳 오란 데가 없는데, 너는 두군데나 합격하고 왜 그냐고. 나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짜증을 내고, K와 나는 언제나 그렇듯 티격태격한다. 워낙 확실한 걸 좋아하는 친구라 축하한다는 말 자체가 섣부른 걸지도 모르겠다. 회사가 마음에 들기 전엔 사실 축하받긴 좀 이르니까. 하지만 K에게는 가끔 고집 부리고 싶고,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이렇게라도 축하하는 글을 남긴다.


2.


K와 두 시간 넘게 통화했다. 우리는 힘든 시기를 잘 살아낸 안도감을 나눴고 선뜻 건네지 못한 위로를 수신이 늦은 편지처럼 주고 받았다. 섣부른 공감이 상처가 될까봐, 자칫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상기시킬까봐 담아둔 얘기였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탓에 오히려 하지 못하는 말들이 있다. 네가 너무 괜찮은 척을 하고 있어서 괜찮냐고 묻지 못했다고, 그때 그 상처가 그렇게 깊고 오래 갈 줄은 몰랐다고. 우리는 굳이 떠맡지 않아도 될 서로의 상처에 대해 어느정도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K와 내가 이런 사이를 유지하는 건, 순전히 K가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K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오래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K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가끔은 나만 기대고 싶을 정도로 다정한 사람인지라, 왠지 모를 질투를 느끼면서도, K와 K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잘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에 기뻤다. 다른 사람이 그러하듯이 K가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기를, K 주위의 모든 것들이 순탄한 기류를 타고 잘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믿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된다고, 좋은 사람만 다가오는 건 아닌 거 같다." K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나는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했다. 대신 다가오는 사람들을 잘 판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사람을 쉽게 믿냐는 질책으로 들렸다면, 그건 K가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 거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K가 사람으로 인해, 사람을 멀리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건 K가 스스로를 잃는 것만 같다고 생각해서였다. 늘 거리를 두고, 관계를 끊고, 마지막을 상정하고 사람을 만나온 내게 끈질길 정도로 말을 걸어준 사람이 K이니까. 때때로 그 온기에 집착하게 될 만큼 따스한 마음을 전해준 K가 스스로를 잃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K가 언제나 그렇게 따뜻한 사람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이제는 내게 따스한 사람이라 좋은 게 아니라, 그저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 좋다. 그래서 K가 때때로 인간관계에서 따스함을 잃고 돌아올 때, 내가 받은 온기를 꺼내어 나눠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K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길 원했듯이,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친구 A에게


서른이다. 빠른 년생이라 우기고 싶지만, 얼마전에 생일도 지났으니 이제 받아들여야겠다. 나는 나이 들었다는 걸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체감한다. 주식, 부동산, 이직, 결혼... 웃고 즐기기엔 머리 아픈 얘기지만, 자연스레 관심 가는 주제들이다.


마 전 A가 결혼한다는 말을 꺼냈다. 결혼 계획조차 듣지 못한 상태라 그런지 그 소식에 적잖이 놀랐다. 너가 벌써 결혼이라고? 우리 사이에서 먼저 결혼 같은 사람 꼽으면 항상 1위였던 친구지만, 막상 그 얘기를 들으니 실감이 안 나긴 했다. 스드메 박람회에 다니고 신혼집 알아보느라 바쁘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리 나이 들었구나. 그 당연한 사실이 때론 서늘하게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우리의 인생을 향해 날카로운 화살을 겨냥하고 있는 기분이다. 안정적인 직장, 결혼 자금, 집, 배우자...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레 갖춰야 할 것도, 선택해야 할 것도, 포기해야할 것도 늘어난다. 그런데 왜 나는 자꾸 중요한 무언가를 빼먹고 넘어간 기분일까. 게임에서 보스를 상대하기 위해 꼭 있어야만 하는 아이템, 혹은 그 아이템을 얻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방을 생략하고 지나간 건 아닐까. 만약 인생을 게임으로 비유할 수 있다면 나는 보스를 이길 수나 있을까. 그 보스를 만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많은 난관을 넘을 수나 있을까. A를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고, 너무나 행복해보여서 친구 A의 연인에게도 얼마간 감사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구나. 우리 벌써 그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그러한 생각에 불안해졌다. 내 인생은 이제 Stage 30이다. 이번 단계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또 어떤 장애물을 헤져나가야 할까. 그 과정에서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어찌됐든 쉽지 않을  분명하지만 좀 더 힘내야겠다. 그만큼 삼십대는 내게도, 그리고 A에게도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2년의 정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