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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철 May 19. 2022

두 번째 퇴사

또 다시 그만둔 이유




 업무부터 처리하고 팀장님께 담을 요청했다. 두 달밖에 안 된 사원이 장을 불러낼 이유야 뻔했지만, 어찌 됐든 퇴사 사유는 밝혀야 했다. 나로서는 그만둘 이유가 명확했으나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는 게 관건이었다. 퇴사한다는 말이 어려웠던 건 팀 내 분위기 때문이었다. 내 자리에 있던 직원이 수시로 바뀌었다는 점, 수습 기간을 마칠 즈음 퇴사가 반복되었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존 직원이 신입 육으로 업무 시간을 뺏기는 데다, 신입이 담당했던 업무를 도로 가져가야 했기에 정신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다들 지쳐 보이는 상황이었다. 들 그날그날의 일을 겨우 끝낼 만큼 빡빡스케줄이라는 걸 잘 알았기에 퇴사하겠다는 말이 더욱 지 않았다.


그만둬야겠다 생각한 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성향 잘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개인 메신저를 사용한다는 것부터 내겐 큰 불편이었다. 거래처나 업무 관련 카톡방이 스무 개를 넘어가고, 채팅 내용들이 카톡을 켤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데다가 그것들로 인해 업무 외의 시간마저 영향을 받니 은근한 스트레스였다. 다음날 또는 다음 주에 해야 할 업무가 생각나고, 그 생각 때문에 잠을 설치거나 자주 답답해지곤 했다.


다음은 나의 능력 부족이었다. 신입이 완벽하게 일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만, 내가 맡은 업체들의 마케팅을 담당해야 했기에 허술해서는 안 됐다. 자잘한 업무가 많아 업무 리스트를 체계적으로 관리 꼼꼼함이 필요했고, 여러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멀티태스킹 능력이 중요했으며, 업체의 요구사항에 대처할 상황판단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내겐 모두 부족한 능력이었고, 업무를 할수록 적응이 되기는커녕 구멍만 생겼으며, 실수 없이 마무리해야겠다는 부담감과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인한 자괴감 때문에 괴로웠다. 





바로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그것도 못 버티냔 소리가 듣기 싫어서였다. 적어도 3개월은 해봐야겠다 싶었고,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어쨌든 전 직장을 그만두고 시간이 꽤 흘렀고, 모아둔 돈도 얼마 없는 데다가, 올해부턴 삼십 대의 시작이니까. 무작정 퇴사할 순 없었다. 일이 잘 맞고 재밌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하다 보면 늘고 견디다 보면 익숙해진다. 나는 한동안 이런 말들을 효험 없는 부적처럼 지니고 다다.


그런데 버티다 보면 괜찮아진다는 말, 그 말이 어느 순간부터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말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일이 삶이 될 순 있어도, 사는 것보다 일이 먼저여서는 안되지 않나. 내 일이 아니다 싶을 땐 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한 생각이 결국 퇴사를 결정하게 했다.


너무 힘든 사랑은 사랑이 아니란 가사가  있듯이, 너무 힘든 일은 내 일이 아니지 않을까.


그 힘이 단순히 업무강도나 사회생활만을 말할 순 없는 것 같다. 업무에서 오는 부담과 압박감, 자괴감, 이 일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고뇌에서 오는 힘 겨움일 수도 있고, 성취감 부족이나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과 괴리에서 오는 결핍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일을 지속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나의 감정과 느낌에서 오는 확신인 듯하다.  일이 내 일이냐 아니냐 하는 매우 주관적인 확신. 거가 없어도 좋다. 나는 그러한 자기 믿음과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퇴사를 결심했다.





역꾸역. 어떻게든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질문에 오래 고민했나 결국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퇴사하고 말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난 뒤에는 내가 다시 일할 수 있을까. 그러한 걱정이 들만큼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고, 같은 실수를 또다시 반복할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삼십 대의 초입이고, 일해야 할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 어떤 일이든 해야만 하고 내 길을 나아가야만 한다. 다만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또다시 퇴사로 이어진 만큼 다음 선택지까지는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이러한 고민이 누군가에겐 그저 징징거림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잘 알지만, 나에게는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너무나도 중요한 자기 객관화 과정임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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