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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철 Jun 24. 2022

장마와 백수와 강아지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법


장마가 시작다. 종일 내리는 비 때문에 방안이 습기로 가득하다. 그리 더운 날씨도 아닌데, 누워만 있어도 금세 몸이 끈적해진다. 미세한 물의 입자마다 강력한 흡착기관이 달려있는 것처럼, 장마철 습기는 집요한 구석이 있다. 숨을 들이쉬면 밀도가 두배쯤 높은 공기가 기관지를 통해 들어오는 기분이다. 이러한 집요함은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불쑥 들이친 비가 거실 테라스에 타닥거리며 튄다. 거실이며, 안방, 내 방의 창문을 얼른 닫는다. 자칫 빨래에 비 비린내가 스며들거나 책장 속의 책에 습기가 낄지 모른다. 세탁기가 있는 조그만 방의 창문까지 닫으니 어느새 집은 밀폐 상태가 된다. 이런 날에는 집 근처의 카페라도 다녀와야지 싶다가도, 막상 나가려니 이 비를 뚫고 나갈 정신적인 에너지가 부족하다. 축 늘어져서 멍하니 앉아있거나 침대밖으로 한 발도 못 벗어나고 누워만 있는 식이다. 어쩌면 비의 입자에는 사람을 침울하게 하는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대체로 쓸쓸하다.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고, 글을 쓰든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혼자 놀기도 이미 질린 지 오래다. 일을 그만둔 지 벌써 한 달이 조금 넘어간다. 구직이 좀처럼 안 되다 보니 백수 생활을 청산하기 쉽지 않다. 이력서를 내고는 있는데, 연락이 오지를 않는다. 이럴 때면 이력서를 받아보았을, 인사 담당자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월요일은 바쁘니까. 화요일이나 수요일은 어중간해서. 목요일이나 금요일은 다음 주 월요일에 연락하려고. 그러다 보면 금방 한 주가 지나가고 떨어졌다는 걸 짐작한다. 그러고 나면 자존감이 금방 무너져 내린다. 내가 살아온 방식을 후회하고, 남들과 상황을 비교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란 좌절감에 깊숙이 빠져들곤 한다.


이럴 때 나를 우울에서 길어 올리는 건 반려견 초코다. 초코는 훌륭한 비즈니스 파트너다. 밥과 간식, 산책을 제공해주는 대신, 초코는 내게 얼마간의 위안을 준다. 곤히 잠들어 있는 갈색 털 뭉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 초코는 걱정이라고는 모르는 듯한 자세로 한껏 퍼질러 자고 있다. 저러다가 일어나서 산책을 가고 싶으면 내 몸에 엉덩이를 붙이고 눕고, 물이 마시고 싶으면 물그릇 앞에 서서 눈치를 준다. 간식이 먹고 싶으면 간식 통을 물고 돌아다니거나 간식 창고 앞에 드러눕는다. 어쩐지 얘 앞에만 있으면 내 고민이 단순 명쾌해진다. 하고 싶으면 하고. 쉬고 싶으면 쉬고, 우울하면 우울하다고 표현하고. 어쩌면 모든 문제의 답은 가장 단순한 데에 있지 않을까.


우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흡착기관이 존재한다. 떼어내려고 해도 다시 들러붙고, 자기들끼리 엉겨 붙어 그 몸집을 키운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를 좀먹고, 머지않아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된다. 단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렁텅이에서 나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당장 일어나는 거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자. 이때는 가장 만만한 일을 우선 해버리는 게 베스트다. 그러다 보면 힘든 일도 금방 지나갈 거라고, 그렇게 믿는다. 지금은 그저 장마를 통과해나가는 중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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