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혜 Jul 03. 2024

스페인 여행 중 욱여넣고 지고 다니던 짐들을 버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견문록

욱여넣고 끌고 지고 다니던 짐들을 버리며, 여행의 무게를 생각했다.

바르셀로나

Barcelona, Spain 여행견문록

iPhone 5s, 2017, 구엘공원


여행의 무게



걷다보니 몸이 점점 떠오르더라.

여행길에 짐은 점점 줄어들더라.


긴 여행엔 많은 게 필요한 줄 알았지.

보라색 캐리어는 내 작은 세상이었어.


어느 날 캐리어 바퀴가 세상으로 뛰쳐나가더라.

흔들리며 위태롭더라니.


커다란 가방은 짐을 다 감싸 안을 수 없더라.

나는 눈물을 삼키며 동행자들에게 말했지.


"우리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더는 함께할 수 없어."


베이지색 두툼한 패딩이 조용히 속삭였어.

"나는 네 동생의 추억, 네 옷이 아니야.

지구 반대편에 버려질 수 없어."


보라색의 자그마한 캐리어가 절박한 듯 속삭였어

"나는 이미 바퀴도 잃고 너밖에 없어.

나를 두고 떠나지 마."


여행 책자가 질세라 외쳤어.

"나의 이야기는 아주 소중해.

책장 한편에 추억으로 남길바래."


에펠탑 모양 열쇠고리 한 뭉치가 웃긴다는 듯 말했어.

"야, 우리 원래 네 개에 원 유로였는데, 네가 일곱 개에 원 유로로 깎았잖아.

그런데 여기에 버리는 건 너무 책임감 없는 거 아냐?"


자주색 오버핏 코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지.

"버림받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 무게가 견디기 힘들다는 것도 알아."


베이지색 패딩이 날카롭게 반박했어.

"그래, 뻘건 코트는 여기 남아.

나는 좀 더 여행할 거야."


자주색 코트가 분노로 물들었지.

"네 다음 목적지는 라스팔마스.

따뜻한 곳엔 패딩도 코트도 필요 없지!"


캐리어가 의기양양하게 베이지색 패딩을 짓누르며 웃었어.

"저 두꺼운 겨울 옷들은 버려,

바람처럼 자유롭게 날 이끌어."


책자와 기념품들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지.

"흥, " "어쩌라고."


나는 그들을 버릴 수 없어 눈물을 참고

녀석들을 캐리어에 모아 닫아 잠갔어.


그리고 자줏빛 코트를 다시 꺼내 입었지.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여행길.


햇살 좋은 날, 바트요와 밀라를 만났어.

알록달록한 공원을 걸으며 푸름을 마셨어.


바트요가 속삭였어. 우리 집에 놀러 와.

밀라도 미소 지으며 말하더라. 그래. 같이 가자.


성당을 지나는 길, 한 남자가 바닥에 앉아있었고

그의 눈과 내 영혼이 조용히 마주쳤어.


구걸하는 그에게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지.

"옷도 괜찮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어.

자줏빛 코트는 내 손에서 그의 손으로.


바트요가 갑자기 말했어.

다른 장기가 모두 썩어도 뼈는 오래 남아.


밀라가 대꾸했지.

뼈도 결국 썩어 사라지지.


바트요가 덧붙였어.

그래서 나는 내 집에 뼈를 새겼어.


밀라가 속삭였지.

나는 다른 걸 남기고 싶어.


바트요가 물었어.

뭘?


밀라가 대답했지.

아직 몰라.


그들의 목소리는 물결처럼 일렁이고,

파도처럼 밀려와 바트요의 집에 닿아 부서졌어.


내 무거운 짐들을 어쩌지?

바트요가 말했어. 너의 뜻대로.


그 오후, 나는 사람들에게 묻고 다녀야만 했어.

내게는 무거운 짐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지를


"캐리어 바퀴만 고치면 돼.

필요하면 가져, 아니면 버릴게."


"내 다음 여행지는 무척 더워.

이 겨울 패딩, 마음에 들면 줄게."


"혹시 여행책자 필요해?

나는 이곳을 남김없이 담았어."


나의 감상이 오래도록 남을 수 있을까?

밀라가 웃었어. 네가 남기려 노력해야지.





iPhone 5s, 2017, 카사 바트요


이야기에 등장하는 바트요네 집입니다.

카사 바트요 Casa Batlló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 중하나입니다.

바트요네 집이라는 뜻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둥글둥글하지만 또 각져보이는 모습이 신기한 건축물입니다.

좋아하는 건축물은 여러 번 보는 것을 좋아해서 낮에도 가보고 해질 무렵에도 가보고 밤에도 가봤네요.


iPhone 5s, 2017, 카사 바트요



2017년에만 바르셀로나를 두 번 갔었는데,

2월에 배낭여행을 하면서 3~4일 정도 있었고 12월 말에 일주일 정도 갔었네요.

직장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시간이 없을 거란 생각에 무지하게 많이 돌아다닌 한 해였습니다.


iPhone 5s, 2017, 카사 바트요


연초에 갔을 때는 실내에 들어가 보지 않았는데, 연말에는 내부에도 들어가 봤네요.

안쪽도 멋집니다.


iPhone 5s, 2017, 카사 밀라


안토니 가우디의 다른 건축물 카사 밀라입니다.

밀라네 집.

둥글둥글하고 내부에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iPhone 5s, 2017, 카사 밀라


발코니나 문, 문손잡이 같은 자재들도 아주 독특한 것들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iPhone 5s, 2017, 카사 밀라


다스베이더 같이 생긴 구조물도 보이고요.




중간을 이렇게 뻥 뚫어 놓은 것이 재밌는 것 같습니다.

안쪽에 사진 집에도 햇살이 들어오겠군요.


동영상은 까사 밀라에서 찍은 것 하나와 까사 바트요에서 찍은 두 개의 영상을 첨부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때의 저에게 말해주고 싶네요.

영상을 기본카메라로 찍어달라고 말입니다..

당시에 왜 이렇게 푸디라는 어플을 즐겨 썼는지.. 후.

카사밀라의 옥상







까사 바트요의 눈 내리는 겨울.

유리가 울퉁불퉁해서 마치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인공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당시에 잠깐 한 이벤트인지 상시 눈이 내리는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전자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

여행의 기록이 새록새록 나네요.

감상을 남길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여행길을 함께한 자전거.



이전 08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니 시상이 마구 떠오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