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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Jul 22. 2024

도시의 개구리 (1)

"원아."


  새벽녘 동이 틀 무렵이었다. 때로 원이는 늦은 밤이나 잠 깰 무렵에 전화를 걸었다. 술에 잔뜩 취한 채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꼬박꼬박 그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가 지지직거렸다. ‘핸드폰이 이상한 건가?’ 나는 핸드폰의 화면을 한 번 켜보았다. 특별하게

이상하지는 않은데..


  "원아, 무슨 일이야."


  “~.~,|\\_<.#%{]| 끄흑:/():”


  원이는 밖에 있는지 시끌시끌했다. 전화기 너머로는 원이의 뭉개진 발음이 들려왔다.


  "울어?"


  “아니 -:($3!.- ㄱㄹㄴ까... ;&5&:$끄흡”


  잠이 싹 달아났다. 원이의 목소리는 확연하게 이상했다. 새벽에 술에 얼큰하게 취해서 친구가 생각나 건 전화는 분명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야 똑바로 말해봐."


  나는 원이에게 채근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달려갈 준비를 했다. 장롱에서 회색 후드 점퍼를 꺼내 입었다. 너무 더우려나? 그래도 그냥 들고 가자.


  "비가.. 엄청 왔다."


  아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비가?"


  후득이는 빗소리가 이제야 귀에 들어왔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 비도 오고 @#$% 그래서.. 흐끕... 니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 @#$^$%"


  원이가 노래했다. 원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였다.


  "너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나는 짜증스럽게 답했고 원이는 계속 울었다.


  "너 술 마셨어?? 밖이야??"


  응. @#$(이거 이제 어떻게 할거요!)@#$ 흐뀹.. 근데 너 여기 못 와. @#$(놔 보라고!)@#


  원이의 목소리 뒤로 걸걸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이는 말하는 중간중간 딸꾹질인지 멈추지 않는 울음인지 무언가를 뱉었다.


  "어디야!! 그리고 너 숨 쉬어. 심호흡 한 번하고 어디 있는지 알려줘."


  나는 집 문을 꽝 닫으며 나왔다.


  "잠시만.. 후.. !@#$(마누라가 아직 안 왔다고! 놔!)"


  전화기 너머로 원이의 심호흡이 들렸다. 원이 주변에 있는 듯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더 가까이 들렸다. 취객인가?


  "@#$ 여 성계초등학교 체육관.. !#$"


  "어? 거기 왜?"


  "전화해서 미안. 전화할 데가 니 밖에 없다."


  "그러니까 왜 거기에 있냐고. 나 복장 터져."


  "후.. 비가 억수로 왔다...@#%@(비켜!)4%#(아버님 이러시면.. !@#)!@#"


  "얼마나 왔길래.."


  "집이 그냥 물에 잠기뿟다. 상계동 사람들은 다 언덕 위로 올라왔다. 여 몇 아저씨들은 소리 지르고 난리다. 무서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원이를 데리러 가려던 다는 왠지 맥이 빠졌다. 정말로? 집이 잠겼다고? 아파트 복도에도 빗물이 튀어 들어왔다. 모여든 물은 배수로로 빠져나갔다. 멍하니 바라본 밖은 새벽해가 뜨는 듯했지만 여전히 어두웠다. 불 켜진 아파트들이 좀 있었다.


  "희원아, 내가 갈게. 차로 가면 금방이야. 우리 집으로 와."


  나는 희원에게 가겠다고 말했지만 밖의 쏟아지는 세찬 비에 눌렸다. 자신이 없었다. 두 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희원을 데리고 올 수 있을까?


  "@#$% 흐끕.. . !@$"


  희원이 또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연수, 여기 다 잠겨서 차로 못 와.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면 나갈 수 있을 거야. !@$!#$' 희원의 말을 끝으로 전화가 지지직거리더니 끊어졌다. 다시 걸어본 전화에서는 수신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만이 나오고 있었다. 다급하게 검색해 본 인터넷에는 희원이 사는 부산시 성계동 근처에 물난리가 났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주민들은 대피했지만 정확한 피해사실은 해가 떠야 집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뉴스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희원의 집은 반지하였다. 성계동의 번화한 거리에서 호떡을 우물거리며 희원이 말했었다. "드디어 전세 구했다. 최소 사 년이다." 그녀가 가장 처음 한 일은 집주인에게 말해서 창문에 철장을 다는 일이었다. 문에도 안에서 잠글 수 있는 잠금장치를 달았다. 희원이 처음에 반지하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오래 살 생각인데 좀 더 괜찮은 곳 어때?라고 말했었던 게 왠지 미안해졌다.  


  "와! 생각보다 되게 넓다." 희원의 집에 갔을 때 내가 처음 했던 말이다. 두루마리 휴지와 라면이 든 쇼핑백을 건네며 나는 그녀의 무사를 기원했다. 원룸이었지만 제법 널찍한 집에 희원은 나름대로의 공간 분리를 시도했다. 조그만 매트리스 옆에는 책장 같은 걸 놓았다. 책장에는 희원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소설책, 좋아하는 피규어, 스노우볼.. "이건 뭐야?" 내가 알록달록한 상자를 가리키자 희원이 호다닥 뛰어와서 상자를 낚아챘다. "이건 내 비밀이지." 희원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기분이다. 연수라면 보여줄 수 있지 마음껏 봐라. 내가 밥 해줄 테니까 그동안만 봐." 희원은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 속에는 종이쪽지들이 가득했다. 훑어보니 희원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이 써주었던 편지나 쪽지들이었다. 몇몇 사진들도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에 같이 나와 같이 찍은 사진도 몇 장 있었다. "와. 이런 사진도 있었어? 나 가지면 안 돼?" 내가 묻자 희원은 "그래. 딱 한 장만 가능."라고 답했었다. 내가 서울에서 전학을 갔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하게 지낸 친구가 희원이었다. 희원은 너무도 당연하게 공고히 쌓여있던 벽을 허물고 들어왔다.


  그때 받아온 사진 한 장. 우리가 수학여행 때 찍었던 사진 한 장이 냉장고 위에 여전히 붙어있었다. 이년 전쯤에 희원이 그 집에 이사 들어갔고, 최근에 재계약을 했던 것 같다. 새벽에 희원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나는 계속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체육관에 가 있다는 희원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영상에서 그 동네의 건물들은 1층 천장정도까지 물에 잠긴 것 같았다. 그것도 물이 좀 빠진 거라고 한다.



  



나는 비가 멎자마자 희원이 지내고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다는 체육관에 도착했다. 체육관에는 몇 개의 텐트가 쳐져있었고 가운데에 희원과 동네 사람들로 보이는 아줌마 몇몇이 앉아있었다. "연수우우~"  희원은 속도 없이 웃었다. 아줌마들은 잠깐 나와 희원을 번갈아보다 관심을 거두었다.


  "꼭 여기 있어야겠어? 우리 집에 오라니까?" 나는 희원을 보자 짜증이 났다. 알 수 없는 짜증이었다. 희원은 항상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선택들을 했다. 때로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렸고,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만화가가 되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에게서 상처받았고 만성적인 손목 통증을 달고 살았다. 희원의 팔목을 감싼 손목보호대가 눈에 띄었다.


  "이래 된 거 우야노. 캠핑하는 것 같고 지낼만하다." 희원이 짐짓 밝게 말했다.


  "어제 전화로는 울고 난리 더니." 희원을 챙겨주고 위로하러 왔지만 말이 계속 퉁명스럽게 나갔다. "집에는 아직 못 가지?"


  "응, 배수로가 막혔대. 정리를 한 번하고 알려준다네." 희원이 말했다. 그리고는 "내 집 볼래? 여기에도 내 텐트가 생겼어." 희원이 팔목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희원이 보여준 텐트는 민방위색의 텐트로 앞에 주소가 붙어있었다. 상계빌딩 101호. 상계빌딩의 가장 아래에 붙어있던 집의 주소가 텐트에 붙어있었다. 텐트 안에는 희원이 챙겨 온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 PC와 희원의 배낭이 보였다.


  "식사받으러 오세요." 체육관의 앞쪽에는 무대처럼 강단이 있었다. 오십 대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가 청색 재킷을 입고 나와서 외쳤다. 그의 옷가슴께에는 조그만 태극기 자수가 있었다. 쌍꺼풀이 짙은 그의 얼굴은 제대로 못 잔 듯 피곤해 보였다. 그가 구부정한 자세로 박스를 가져오자 다른 젊은 직원들도 박스를 몇 개 더 가져왔다. 박스가 무거워서 그의 자세가 구부정한 줄 알았는데, 박스를 내려놓고도 그는 약간 거북이처럼 구부정한 등을 펴질 않았다. 그는 강단 위에 박스를 내려놓았다. 몇몇 사람이 그에게로 다가갔다.


  "식사 드세요. 다른 필요한 것들도 좀 더 정리해 볼게요." 남자가 말했다. 아마도 그는 공무원일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자 한쪽 텐트가 소란스러워졌다.


  "됐고!" 한 아저씨가 외쳤다. "우리 집으로 언제 갈 수 있소?" 그는 언제 갈 수 있어? 언제 살 수 있소? 사이의 어딘가 즈음, 반말과 존대 사이 어딘가 즈음에 있었다. 희원이 옆에서 속삭였다. "저 아저씨 어제부터 계속 저렇게 소리치셔. 어제는 아내분이 안 나왔다고 소리소리쳤는데, 알고 보니까 아내분은 진작 다른 건물 옥상에 대피해 있었단다? 이상하제." 희원의 말대로 약간 이상했다. 새벽에 비가 많이 오고 집에 물이 차는데 아줌마 혼자 대피한다고? "응?" 내가 희원을 보자 희원이 소란스러운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저씨가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엉엉 울고 있었다.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여보, 왜 이래. 이따 정리하자."라고 아저씨 옆에서 말했다. 희원이 말했다. "데꼬 가고 싶겠나. 계속 저라는데."


  "아이고. 사장님. 배수로 정리되고 물 빠지면 말씀드릴게요. 얼마가 걸릴지 저희도 잘 몰라요." 그는 짐짓 침착하게 말했다. 그는 느릿한 말투로 보아 부산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희원이 그를 보면서 내게 말했다. "저 아저씨는 시청에 재난 복구 팀장이다. 김팀장이란다." 김팀장이 바닥에 누운 아저씨에게 말했다. "좀 쉬시고 물 다 빠지면 같이 가보시죠." 그도 잔뜩 지쳐 보였다. 김팀장이 바닥에 누운 아저씨를 달래는 동안 젊은 직원들은 그를 멀뚱히 보고 있었다.


  와중에 사람들은 도시락이 담겨 있는 상자에서 도시락을 꺼내갔다. 두세 개씩 집어가는 사람들에게 시청 여직원이 말했다. "한 사람당 하나씩!" 그 직원은 두 개를 집어가던 아줌마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어머님. 하나씩!" 뒤에서 사십 대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 아주머니를 향해 외쳤다. "아지매요. 하나씩 모자라면 못 묵는 사람은 어캅니꺼." 아줌마는 아쉬운 표정으로 도시락을 시청 여직원에게 넘겨주고는 자신의 텐트 쪽으로 돌아갔다. "저 아지매 집은 잠기지도 않았는데 왜 여 와있노. 아지매 집은 오 층 아이가." 아줌마에게 뭐라고 했던 아저씨가 계속 구시렁 댔다.  


  "내는 어제저녁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저녁도 못 먹었다! 내가 더 먹어야 하는 거 아니겠나!" 아저씨가 빽 소리를 지르자 시청 직원이 도시락을 나누어주다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희원과 나도 도시락을 하나씩 받아 손에 들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도시락을 내밀었다. "저는 밥을 먹고 와서요." 아저씨는 도시락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아줌마가 들어간 텐트 쪽으로 눈을 흘기며 "저 아줌마는 우리 빌딩 주인이다."라며 비밀을 말하듯 속삭였다. "월세를 얼마나 받아쳐 묵는지 돼지인가 했는데 도시락도 탐내는 거 봐라."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동의하냐는 듯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더듬거리자 그는 그냥 자기 텐트 쪽으로 총총 걸어갔다.


  "학생, 한창 클 때인데 그러지 말고 그냥 먹어." 김팀장이 다가와 도시락을 건네며 말했다. "어린 여학생이 혼자 있어서 말은 안 해도 좀 걱정스러웠는데 남자친구가 와서 다행이네."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치고는 다시 도시락 아수라장으로 돌아갔다.


  희원과 내가 텐트 앞에 앉아서 도시락을 까먹는 동안 시청 직원들은 하나씩 도시락을 들고 강단 위에 있는 조그만 공간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을 저기에 꾸린 모양이었다. 직원 하나가 김팀장에게 도시락을 먹겠냐는 듯 내밀었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고는 의자에 앉아서 텐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김팀장은 레고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의 얼굴이 약간 누렇고 턱이 울긋 불거 있는 네모진 얼굴이어서 그런지 그가 더욱 레고같이 보였다.





희원은 텐트 안에서 태블릿에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고 나는 멀뚱히 희원의 뒷모습을 보며 앉았다 누웠다 했다. 괜히 왔나 싶었다.


  "니 그냥 집에 가도 된다." 희원이 말했다.


  "전화했을 때는 그렇게 엉엉 울더니. 이따 밤 되면 또 전화해서 질질 짤 거 아냐. 왔다 갔다 하기 귀찮아. 그냥 여기 있을래." 내가 말했다.


  "이제 괜찮다. 어제는 여기 아무것도 없고 그냥 사람들만 모여 앉아있는데 저 이상한 아저씨들 시끄럽게 떠들고 그래서 좀 무서웠다. 갑자기 집에 물 들어차는 것도 그렇고." 희원은 뒤돌아 앉은 채 말했다. 그녀가 들고 있는 화면에는 어떤 색깔이 나왔다가 옅어졌다가 드로잉이 나왔다가 했다. 희원은 계속해서 그 선과 색들을 조정했다. 희원은 웬 개구리들을 그리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우산을 쓴 개구리들을.




  "마감 있어?" 내가 묻자 희원이 말했다. "마감은 무슨 그냥 혼자 하는 거지." 희원은 한 반년 전부터 어떤 만화가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고 했었다. 한 달 전만 해도 마감 때문에 바쁘다는 이야기를 계속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이야기를 안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왜 요새는 그 하늘 위 동동 인가하는 웹툰 안 해?" 내가 희원에게 묻자 희원은 잠깐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내가 대답을 재촉했다. "응?"


  "저기 학생" 희원의 대답대신 밖에서 김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내가 말하며 텐트의 지퍼를 올렸다. 김팀장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남자친구도 있었네. 이거 좀 먹으라고." 김팀장은 나도 텐트 안에 같이 있는 줄 몰랐는지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주변을 살피며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희원이 물었다. "아 그냥 내 차에 좀 있던 과자 같은 거야. 자네들 보니까 우리 아들이랑 딸 생각이 나서.." 김팀장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희원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혹시 도울 일 있으면 알려주세요."라고 덧붙였다. 김팀장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혹시 이따가 우리 쥐끈끈이 좀 체육관 주변에 놓으려고 하는데 도와줄래? 우리 직원들이 쥐를 무서워한다네. 쥐끈끈이 갖다 놓을 때 쥐를 만날 일이 없긴 한데. 왜 못하겠는지 참.. 허허." 그는 멋쩍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그래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냥 저희 주시면 둘이 돌아다니면서 쥐 나올만한 데다가 갖다 놓을게요." 희원이 말했다. "근데, 이 동네에 쥐가 있어요?" "어. 비가 많이 오고 해서 그런가 숨어있던 게 나오나 보더라고. 나도 아직 못 봤는데, 여기 어떤 아주머니가 쥐 나왔다고 난리를 쳐놔서. 뭐라도 하려고." 김팀장이 말했다. "그래요. 저희가 할게요." 내가 말하자 김팀장은 "그래. 고마워요."라며 임시 사무실로 갔다. 어느새 임시 사무실에는 수해 피해 복구단이라는 푯말이 걸려있었다.


  희원은 텐트에 들어와 벌렁 누운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희원이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려놓고 과자봉지를 뜯었다. 


  "맛있당. 먹을래?" 희원이 말했다.


  "나는 별로." 나는 왠지 과자를 먹고 싶지 않았다.


  "왜?" 희원이 되물었다.


  "그냥.. 왠지 저 아저씨 좀 특이한 거 같아서." 내가 망설이며 말했다.


  "넘겨짚는 거 아냐?" 희원이 과자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 근데 촉이라는 게 있잖아. 직관." 내가 희원에게 대답했다. 왠지 졸렸다.


  "촉?" 희원이 웃었다. 그리고는 "직관적으로 판단한 건 그만큼 치우쳐있을 수도 있다는 거 아닐까? 잘못됐을 수도."라며 과자를 집어 물었다. 


  "아냐. 이십몇 년 간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희원에게 말하는 동안 눈이 감겨왔다. "근데 이 각도에서 보니까 좀 못생긴 것 같기도.." 


   "뭐? 천천히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안 못생겼을걸." 희원이 주먹을 지켜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잠에 들었다.

  




잠결에 설핏 희원이 옆에서 잠든 걸 본 것 같은데, 나는 희원이 텐트에 들어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디 갔다 와?" 내 물음에 희원이 인상을 찡그렸다. "왜?" 내가 되묻자 희원이 무릎을 세우고 앉아 얼굴을 묻었다. "왜." 나는 희원의 등을 토닥였다. 희원이 말했다. "너무 곤히 자길래. 내 혼자 체육관 옆에 쥐끈끈이 놓고 왔다. 나가보니까 동네가 다 내려다 보이더라 물도 빠진 거 같더라." 희원이 말하는 중간에 한숨을 쉬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람들 몇 명은 자기 집에 가본다고 갔고.. 그래서 같이 좀 있다가 웬 웅덩이가 있어서 이게 뭔가 해서 봤지. 근데 거기에 손이 있는 거야. 뭔가 봤더니 사람이 빠졌더라고... 그렇게 깊지도 않았는데.." 희원이 말했다. "그래서 밖에 경찰 오고 난리였다. 그냥 실족한 거 같다는데..." 희원은 한참 말을 멈추었고 나는 희원의 등을 쓸어주고 있었다. 희원이 말했다. "하. 내 여서 뭐 하는 거고."


  "그러니까. 물 빠지고 너네 집에서 챙겨 나올 거 있으면 챙겨서 우리 집에 가자." 내가 말하지 희원이 대답했다. "그래야겠다. 진짜 이게 뭐고."





김팀장님이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쓰고 있었다. 사망자 5명, 부상자 19명, 실종자 15명. 희원은 텐트 밖으로 나오며 신발을 신다가 멍하게 앉아있었다.


  내가 팀장님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혹시, 그.. 희원이랑은 양산으로 넘어가서 지내려고 하는데, 희원이 집에 들러보려고 해요." 팀장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희원이 집에 한 번 가봐도 될까요? 저.. 실종자도 많고 부상자도 있다는데 동네에 가도 되나 해서요." 팀장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저.. 학생. 희원학생이 사는 곳이 반지하 방이어서 거의 천장까지 물이 다 찼을 거야. 아무래도 거기서 필요한 물건 챙겨서 올만 한 게 없을 거야 아마도. 물이 이게 생각하는 깨끗한 물이 아니라 완전 흙탕물이거든. 우선 대피소 말고 다른 지낼 곳이 있으면 거기로 이동하고, 지역이 좀 정리되면 희원학생 전화로 연락이 갈 거야. 그때 슬슬 와서 치워도 되지. 비도 그쳤고.. 오늘 군부대에서 나와서 현장 복구 하거든. 일주일 내로 얼추 정리가 될 거야. 각자 집은 그때부터 정리하게 될 것 같아." 팀장은 막힘없이 말했다. 아마도 몇 사람이 팀장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그때마다 반복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저.. 근데 학생." 팀장이 나를 다시 불렀다. "희원학생 사는 오피스텔은 괜찮을 거야. 시설도 잘 되어있고.. 이번에 배수로 뚫으면 같은 사고 잘 안 날 거니까. 집 정리하는 것도 희원학생이 문 따주면 시청에서 도울 거고. 다시 돌아와 사는데 문제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까 희원학생이 웅덩이에서 시신을 한 구 발견했어. 내가 괜히 쥐끈끈이 놔달라고 부탁해서.. 많이 놀란 것 같던데 잘 달래주라고." 그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짧게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팀장의 이야기는 희망적인 이야기였지만 왠지 기분이 찝찝했다. "밥 먹고 가지?" 김 팀장님이 말했다. "아뇨. 해 지기 전에 가려고요." 내 대답에 김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김팀장이 탄성을 지르며 나를 붙잡았다. "학생, 갈 때 저기 사무실에 쌀 하고 기부받은 것들 좀 있어, 챙겨서 가. 직원들한테 달라고 하면 줄 거야. 차 주임한테 달라고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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